오늘은 위험했다. 하마터면 아빠한테 설득당해 산티아고로 가야 할 뻔했다. 아빠가 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살 일기
산티아고를 안 가고 레고랜드에 가게 돼서 기분이 좋다. 근데 형은 왜 이렇게 화만 내는 걸까?
“나중에 군대 가면 행군이라고 많이 걸어야 하거든. 지금 좀 훈련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그냥 나중에 군대 가서 훈련받을게요.”
“짐을 나누어 산티아고로 부치고 나면 배낭이 가벼워져서 걸을만할 거야.”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걷기만 하는 시간이 아까워요.”
“아빠가 알아보니까 그날 우리가 걸었던 그 길이 순례 길에서 가장 힘들었던 길 이래. 앞으로 걷는 길은 모두 쉬울 거야.”
“아빠, 난 안 갈 거예요.”
일우의 뜻은 무척 완강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던 혁우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형과 같은 의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형에게 모종의 제안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장난감 같은 걸로 매수당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이곳 팜플로나로 온 가장 큰 이유는 산티아고 우체국에서 짐을 부치기 위함이었는데 아무리 짐을 펼쳐 놓고 보아도 나누어 부칠 짐이 없었다. 가장 부피가 많이 나가는 것이 옷가지들이었는데 햇볕이 좋은 여름 같으면 빨아서 바로 말리면 되기에 옷 두어 벌이면 충분했지만 건조가 힘든 겨울에는 여러 벌의 옷이 필수였다.
한국에서 저렴한 가격에 득템 했다고 좋아했던 침낭은 두껍고 무겁기 짝이 없어 배낭의 부피와 무게를 늘리는 최대 원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침낭을 부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침낭과 옷가지들을 제외하면 남는 짐은 거의 없었다. 조금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얇고 가벼운 기능성 의류와 침구를 준비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순례길을 포기하는 선택 역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로 순례길을 마친 후 관광을 위해예약했던 모든 것들을 취소 혹은 변경해야 했다. 그중 가장 시급했던 것은 스페인에서 40일 정도 머물 것을 예상해서 예매해 두었던 로마행 ‘라이언에어’ 항공권 일정을 앞당겨야 하는 일이었다. 워낙에 비싼 수수료로 악명 높은 항공사인지라 자칫하면 항공권을 그대로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두 번째는 여행 경비 문제였다. 걷기만 하는 되는 순례길에서는 교통비와 관광비가 따로 들어갈 일이 없어 식비와 숙박비만 준비하면 되었는데 여행으로 전환하면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남자 세 명의 1박 비용이 30유로에 불과한 순례 길의 숙박비용에 비해 이제부터 우리가 찾아갈 관광지의 숙박비용은 최소 그 두 배 이상일 것이었다. 또한, 여행기간이 길어지면서 늘어나게 될 새로운 짐들을 넣을 수 있는 대형 트렁크도 구입해야 했다.
세 번째는 새로운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순례 길의 기간을 40일 정도로 잡았으므로 그 기간만큼의 새로운 일정을 채워 넣어야 했다. 아무리 한 번 와봤던 유럽이라지만 사전 준비도 없이 새로운 동선과 계획을 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여행이기에 아이들의 흥미와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장소를 위주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기간은 길어졌는데 갈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도무지 남은 두 달 이상의 일정을 채울 자신이 없던 나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팜플로나 시내의 공원
“조금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왜요?”
“순례 길을 가지 않으면 추가로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두 달은 너무 긴 것 같아 말이지. 여행경비도 문제고.”
“돈 아끼면서 천천히 다니면 안 돼요?”
“여기까지 왔는데 일찍 돌아가기는 싫어요.”
“아빠, 우리 레고랜드는 갈 거죠?”
“야! 아빠랑 중요한 얘기 하고 있잖아.”
“지난번에 아빠가 레고랜드 간다고 그랬단 말이야.”
“형도 가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걸 정하는 게 더 급하다고.”
겨우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굴고 있는 일우가 대견하면서도 측은했다. 하는 수 없이, 마드리드에 머물며 장기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와! 아빠, 이제 순례길 안 가는 거죠?"
"일단, 마드리드에서 가서 생각해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상 순례길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례 길을 가지 않게 되었다고 저토록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다시 또 순례길을 걷자고 제안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