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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05. 2022

사람의 균형

드라마 '1883'의 한 장면을 보고




주인공인 제임스 더튼이 어린 아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친다. 더튼이 조준을 한 후 아들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총소리와 함께 커다란 사슴이 맥없이 쓰러졌다. 부자는 사슴 곁에 다가섰다.


"네 첫 사냥이니 피를 바르자. 우릴 살리려고 이걸 죽인 거야. 그러니 고맙다고 해야지."

"누구한테요?"

"사슴한테"

"하지만 죽었잖아요. 못 들을걸요?"

"그래도 고맙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고맙다고 하죠?"

"그냥 말로 하면 돼."

"고마워..."


"아들아,  우리가 무언가를 죽이는 순간 우리는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워지게 된단다. 우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해. 그게 인생이란다."


더튼의 아들은 이제 인생을 알게 되었을까?




현대의 사람들은 죽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집에서 맞이하던 죽음은 이제 격리된 병원의 병동에서 몇몇 가족이 보는 앞에서만 치러진다. 사람의 죽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매일 먹는 소나 돼지, 닭 같은 동물들의 죽음에게서도 우리는 거의 완벽히 격리되어 있다. 우리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처럼 너무도 편하게, 한 때는 우리와 같은 생명이었던 죽음을 돈을 지불하고 먹는다.


만약,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 직접 동물을 죽여야만 한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쉽게 육식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튼의 아들이 했던 것처럼 그의 생명을 먹기 위해 그를 죽이고, 그의 죽어가는 눈동자를 보며, 그에게 감사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고기를 먹는 것에 많이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설령 우리가 잡아먹기 쉬운 동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 모두가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어차피 현대의 우리들이 육식을 포기할 수 없다면, 더튼의 말처럼 사람으로서 좀 더 균형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역시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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