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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25. 2022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행복




월요일 아침, 샤워를 하면서 오늘 해야 할 업무를 떠올렸다. 언제나 그렇듯 업무를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초조해진다.


'계획대로 잘 되겠지?'

'미리 그 일 해놨어야 했는데 오늘 그 일까지 하려면 빠듯하겠는걸?'

'주말에라도 나올 걸 그랬나?'


수없이 많은 걱정이 마치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지네들처럼 내 뇌 속을 헤집으며 돌아다닌다. 지네들의 몸통에는 걱정의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가시 같은 발들이 달려있어 그것들이 지나갈 때마다 불안의 생채기를 낸다.


'언제까지 이런 반복되는 일상을 쳇바퀴처럼 살아가야 하는 걸까?'

'홀가분하게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면.'


어느새, 나는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이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아침 일찍 송금을 해야 할 일이 있어 스마트 폰을 열었다.


'푸틴은 과연 핵공격 버튼을 누를까?'


무섭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지구 반대편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이 떠올랐다. 극심한 전쟁의 고통에 신음 중이고 있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내가 이토록 무료해하고 있는 일상을 간절하게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쟁으로 도시의 기반시설이 파괴된다면,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전기제품부터 수돗물, 하수도,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정화조까지 대부분의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생활은 그야말로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고 말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문명 이전의 생활보다 더 비참할지도 모른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농경은 커녕 수렵이나 채집마저 불가능한 까닭에 마트나 쇼핑센터를 약탈하지 않는 한 식량은 커녕 물조차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도시의 높은 인구밀도는 순식간에 물과 식량과 같은 자원의 심각한 부족을 야기할 것이고, 그것은 전쟁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우리는 지금 이토록 힘들어하는 무료한 일상을 간절하게 그리워하지 않을까?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숨 막히던 출근길 만원 지하철부터 심지어 매일매일 나를 괴롭혔던 못된 직장 상사까지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과 불행이란 개념은 이토록 상대적일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은
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행복한 나날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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