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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Sep 21. 2022

간헐적 단식이 47시간 단식이 되다.

72시간 단식 실패담



추석 연휴 동안, 너무 많이 먹었다.


연휴를 마친 다음날, 점심이 되어도 배의 더부룩한 느낌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사실, 나는 연휴 얼마 전부터 체중관리를 위하여 18시간을 금식하고 6시간만 먹는 18-6 단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 동안은 전혀 그 수칙을 지킬 수 없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 기쁨에 체중관리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폭식을 한 나의 체중은 간헐적 단식을 하기 전의 체중을 가볍게 넘어서 버리고 말았다. 부풀어 오른 배로부터 허리띠로 전해지는 배의 팽팽한 묵직함이 불편감과 함께 불쾌한 허리 통증을 고통스럽게 전해왔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는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에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비상사태였다.


일단, 점심을 굶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배는 더부룩한데 허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단식 어플인 '단식 추적기'에 나온 정보가 위안을 줬다.


'우리의 굶주림은 대부분 감정적 굶주림이다.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같은 신체적 굶주림과 달리 감정적 굶주림은 지루함이나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에 반응하여 발생한다. 신체적 굶주림은 점진적으로 발생하며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나, 감정적 굶주림은 갑자기 발생하며 충동적으로 당장 먹고 싶어 지게 된다. 또한, 신체적 굶주림에서는 어떤 음식이라도 생각나나, 감정적 굶주림은 특정 음식만이 떠오른다. 신체적 굶주림은 먹다 보면 점점 사라지고 배가 부르게 되면 멈춰지나, 감정적 굶주림은 부른 배와 상관없이 과식을 넘어 포식까지 하게 된다. 신체적 굶주림은 먹은 후에 만족감이 생기나 감정적 굶주림은 극단적인 과식 후에 죄책감과 후회만 남게 된다.'


배가 고플 때마다 이것을 감정적 굶주림이라고 정의하고 물을 마시며 5분씩 버텼다. 그렇게 5분씩 견디다 보니 어느새 당장 나를 죽일 것 같았던 허기가 가셔지기 시작했다. 이는 명상 시,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괴로운 생각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올라가게 되는 것을 많이 조심했다. 나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먹는 것으로 푸는 경향이 있었기에 평소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더욱 조심했다. 하지만, 업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오늘 이 순간만 넘기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버텼다.


원래 저녁에는 정상적인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저녁 6시를 넘어 식사를 하면 일단 24시간 단식을 달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내 몸의 상태가 괜찮았다. 다소 힘이 없긴 했지만 배고픔은 점심때보다 많이 사라져 있었다.


인생에서 하루를 꼬박 굶어본 일이 있었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기억은 없었다. 한 끼라도 굶으면 힘들어했던 나였기에 하루 세끼를 모두 굶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이번 저녁만 건너뛰면 나는 하루를 통째로 굶게 되는 것이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을 시전 했다. 다행히 이곳 브런치에 좋은 글이 있었다.


https://brunch.co.kr/@pusyap/414



푸샵 작가님의 위의 글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24시간 이상의 단식은 체중감량은 물론,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의 민감도를 높여 당뇨의 위험을 낮추고, 불필요한 세포를 스스로 잡아먹는 자가포식 작용을 일으켜 신체조직을 재정비하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름 단식에 대한 확신을 얻은 나는 내친김에 36시간 단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36시간이 참을만하면 48시간까지, 그때도 견딜만하다면, 우리 몸의 해독과 재정비에 가장 좋다는 72시간 단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평소 저녁에 하던 주짓수 수련은 쉬기로 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거 오히려 몸이 안 좋아지는 거 아녜요?"

"추석에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부대껴서 그러는 거니까 오늘 저녁까지만 먹지 말아 볼게요."

"그렇게 먹다가 안 먹다가 하면 속이 다 망가진다는데."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아마도 속으로는 이 인간이 또 괜한 짓을 벌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30시간이 지나면서 배고픔이 다시 올라왔다. 잠을 자야 하는데 허기 때문에 잠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보면서 허기를 잊을 수 있었다. '수리남'은 30시간의 허기마저 잊게 할 만큼의 재미와 몰입감이 있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단식 시간이 마침내 37시간을 돌파했다. 일단 어제 정한 1차 목표인 36시간을 가뿐히 돌파한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평소 일어날 때 느꼈던 천근만근 하던 무거움과 근육통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특히, 허리 통증이 심했는데 오늘 아침은 그다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줄어든 복부로 인해 허리의 부담이 줄어서 인 것 같았다. 그동안 복부 앞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던 물주머니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몸의 가벼움은 마음마저 가볍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출근을 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을 안 먹다니, 스스로가 신기했다. 단식은 정말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내가 37시간이 넘도록 안 먹었다니...... 게다가 그 오랜 시간을 먹지 않았는데 이토록 컨디션이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생소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점심을 가까스로 넘긴 나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는 도저히 식욕을 누를 수 없었다. 푸샵님의 추천대로 구내식당에서 굵은소금을 구해 물에 타 먹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 가져가기 위해 구내식당에 미리 주문해 두었던 샐러드를 보는 순간, 나의 식욕은 다시 활활 살아나 버리고 말았다. 몇 점의 훈제 오리고기와 계란 반쪽, 채소들, 평소 잘 먹지 않던 그 음식에 나는 속절없이 끌려가고 말았다. 나는 이미 미끼를 물어버린 생선이었다. 그렇게 훈제 오리고기 한 점을 물어버리는 순간, 나의 단식은 47시간 31분을 찍은 채 중단되고 말았다.


원래, 단식 후에는 적절하게 미음이나 야채탕 같은 부드러운 음식으로 보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날뛰기 시작한 나의 식욕은 보식은커녕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쿠키와 과자 부스러기까지 모두 먹어 치우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이 되었다.




결국, 나의 72시간 단식 도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위안을 삼고 싶다.  36시간 단식은 성공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36시간을 가뿐히 넘어 13시간이나 더 한 것이었다. 비록 단식 후, 보식을 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샐러드라도 챙겨 먹은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토록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지금은 비난보다는 칭찬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동안 아침, 점심, 저녁 매끼를 챙겨 먹으며 내가 좋아서, 먹고 싶어서 먹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세끼니 가운데 한 끼라도 굶으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큰일 날 거라고 생각했다. 배고픔은 내게 곧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내가 먹었던 음식의 주인이 아니라 음식의 노예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비록 72시간 단식에는 실패했지만, 이번 경험으로 나는 커다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틀 정도 음식을 먹지 않고도 건강한 컨디션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끼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

덜 먹으면서도 건강해질 수 있고 그 덜 먹음으로 인해 지구 환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

이번 72시간 단식 실패의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덜 먹을 수 있다면
우리와 지구는 그만큼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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