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힘든 글쓰기

새옹지마

by 옥상평상

최근 브런치를 다시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이 있었다.

'일주일에 글 한 편은 쓰자.'


물론, 이것이 내게는 너무 힘든 목표임을 알기에 동시에 살짝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두었다.


'일주일에 한 편이 힘들다면 적어도 이주에 한 편만이라도 쓰자.'


사실 글재주는 물론 꾸준함도 없는 내게 한주에 글 하나는 물론이고 이주에 글 한편 쓰는 것조차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11월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글 한 편을 완성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시작은 하고 마무리를 못했다면 이번에는 도통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 있어도 글로 쓸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좋은 곳을 가고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를 봐도 좀처럼 글로 적을만한 감흥이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빨리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덧 의무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의무감은 서서히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회사 업무만으로도 힘든데 고상한 취미 정도인 글쓰기로 스트레스까지 받기는 싫어 일부러 브런치에도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글쓰기 자체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생활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기대감도 있었다.




어느 날 샤워를 하는데 불현듯 쓰고 싶은 소재가 생각이 났다. 보통 소재가 떠오를 때면 단발로 끝날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중간부분과 끝맺음까지도 떠올라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하지만, 샤워 중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씻고 난 다음 나가서 메모를 하기로 했다.


"아빠, 지난번에 얘기한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게임 사주세요."


욕실 문을 나서는데 둘째가 불쑥 내게 게임을 사달라고 이야기했다.


"응, 그 얘긴 차차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지난주에도 생각해본다고 했잖아요."

"그, 그랬나?"


어떻게든 사주고 싶지 않은 내 속마음이 아이에게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아빠는 내 이야길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둘째의 뒷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제 딴에는 일주일 전부터 내게 공들여 이야기한 것일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둘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 이야기할까 하다가 문득 메모를 하려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까 떠올랐던 이야기가 뭐였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욕실에 들어갔다. 욕실에서 생각났으니 욕실의 물건을 보면 생각이 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욕실의 어떤 물건을 봐도 떠오르는 건 딱히 없었다. 어쩌면 시간이 좀 지나면 생각이 날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한심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샤워기를 통해 흐르고 있는 물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욕실 한 켠에 쭈그려 앉아 애먼 수챗구멍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모처럼의 글감은 기억과 함께
저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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