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얼마 전 시작한 전화영어 통화를 허겁지겁 마친 직후였다. 가뜩이나 잘 들리지 않던 그녀의 필리핀식 영어는 오늘따라 더 들리지 않았다. 대화 내용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십오 분이라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통화가 끝난 후, 카톡으로 온 그녀의 피드백은 언제나처럼 나의 발음과 말하기가 인상적이라며 칭찬하는 이야기였다. 오늘은 몇 차례 대답도 못하고 정말 엉망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는지도 몰라도 그녀의 한결같은 피드백은 오히려 나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축 처진 기분 사이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리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었다. 브런치라는 숲 속에서 배회하기를 시작한 나는 공감을 느낀 글에 '감사함'과 '응원'을 담아 '좋아요'를 눌렀다. 댓글을 쓰는 일은 아직까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좋아요'를 누르던 나는 문득, 오늘 '좋아요'를 누른 글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힘든 회사 생활에 관한 이야기이거나 퇴직 후의 힘든 삶을 다룬 이야기들이었다. 당장 내일의 출근길이 두려웠던 나의 무의식은 나름 그 두려움을 달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나 힘들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지.'
'회사 밖은 지옥이라잖아. 힘들어도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는 게 어디야?'
'출근하고 월요일만 버티면 나머지 한 주는 금세 지나갈 거야.'
지금은 폐지되고 없는 한 개그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일요일 늦은 저녁에 방영하던 그 방송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였기도 했지만 다음날 출근을 우울해하던 직장인들이 그 우울을 잊기 위해 일부러 찾아봤던 까닭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개그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도 일요일 밤이 되면 습관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틀어놓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방송이 없어진 현재 나의 무의식은 티브이 대신 스마트폰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힘듦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다음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자고.'
그렇게 직장에 대한 감사와 출근에 대한 다짐을 하며 브런치 앱을 닫으려는데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주저앉고 싶을 때 용기를 주는 스티브 잡스의 어록'
'지난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할 일을 하고 싶은가?"
'만약, 이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이고,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면 당신에게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변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