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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Dec 19. 2022

읽지 못한 카톡에 추궁당할 때

외국에 있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가끔씩 내게 카톡을 보내 안부를 물어왔다.


"잘 지내지?"

"응, 잘 지내지."

"가족들은 잘 지내고."

'응"

"너희 가족들도 잘 지내지?"

"뭐, 그렇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런 패턴으로 우리의 카톡대화는 진행되었다. 그동안 친구와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사실 친구가 카톡을 보낼 때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잘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어머니가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내가 일과 인간관계에 치여 우울증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해 오는 친구에게 그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자랑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고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말하는 게 껄끄러웠다.


그러던 중, 올해 내가 몸이 안 좋아 수술을 받은 때였다. 회사에는 병가를 내고 내가 없는 동안의 업무인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업무연락 외에 내게 긴급하게 카톡을 할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당연히 이틀 정도 카톡 확인을 하지 않았다. 수술에서 가까스로 회복을 한 나는 휴대폰을 열어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카톡창에는 수 십 개의 단체 대화방의 메시지와 함께 그 외국에 있는 친구의 메시지도 와 있었다.


"잘 지내지? 여긴 많이 덥네. 거긴 어떠니?"


처음 메시지는 가끔 오던 메시지와 비슷한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메시지였다. 친구는 내가 하루 정도 답장이 없자 이튿날 두 번째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왜 카톡을 확인 안 해. 일부러 확인 안 하는 거야?"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냥 농담인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친구가 이민을 간 이후로 우리 사이는 꽤나 건조했고 형식적이었다.

'이전에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던 걸까?' 도 싶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에 잘못 같은 것을 할 겨를 따위 역시 없었다. 나는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솔직하게 "며칠, 수술하고 치료받느라 답장을 못했어."라고 보내기는 너무 싫었다. 왜 싫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수술 사실을 알리는 것도 싫었고 친구의 무례한 질문에 그렇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지 못한 적도 있어 당장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경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말을 보낸 적은 없었다. 결국, 나는 친구의 카톡에 답장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친구 역시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내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며칠 수술하고 치료받느라 답장을 못했어."라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친구는 당연히 병명을 물었을 것이고 나는 말하기 싫은 내 몸 상태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대화에 이어 '몸조리 잘해.'같은 의례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것이 싫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탓도 있었으리라.


우리는 오랜만에 상대방과 연락을 하면서 대체로 그의 상황과 마음이 내가 생각한 것과 같기를 바란다. 하지만, 떨어진 지 오래된 인연일수록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있을 경우가 많다. 그것이 '승진'이나 '복권 당첨'같은 좋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직장에서의 실직'일 수도 있고 '가족의 죽음' 또는 '신체적 질환'과 같은 안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매일 보는 인연이 아닌 이상, 오랜만에 보내는 연락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상대의 상황에 대한 배려와 어쩌면 답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일로 그와의 소중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마저 빛바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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