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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Dec 21. 2022

그때의 크리스마스는  왜 그렇게 더 즐거워 보였을까?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와도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가 힘들게 되었다. 2천 년 대 초반만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거리에는 온통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를 장식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는 크리스마스트리같이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갔다.


하지만, 이젠 어느 거리를 걸어도 예전만큼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은 바깥으로 잘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러한 분위기는 코로나 규제가 해제된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뭐 꼭 크리스마스 같은 서양 기독교 명절을 챙겨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은 없겠지만서도 말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를 떠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간의 시작점 같은 의미가 있었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크리스마스이브 날만큼은 선물을 받기 위해 교회나 성당을 찾았으며 평소, 예수님을 믿지 않던 아빠들도 이 날만큼은 산타할아버지를 자처하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했다. 연인들 또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밤새 그 냉장고 같은 거리를 돌아다녔으며, 연인이 없는 솔로들은 중국집에 모여 앉아 짬뽕 국물에 소주를 연거푸 마신 후 괜한 심통에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며 가정의 평안을 기도했다.


크리스마스는 모두에게 있어 하얀 생크림 케이크 같은 날이었다. 그날은 예수님의 생일이기도 했지만 모든 이들의 생일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생일을 맞은 듯 각자의 가슴속에 케이크 한 조각 아니, 한 상자를 품고서 서로를 향해 축하인사를 건넸다.


생각건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개인화되어왔고 공간적으로 함께하는 것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코로나 사태로 급기야 절정을 맞이했고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후의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아이들은 놀거리를 찾아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그렇게 모여서 놀이를 했으며 함께하는 기쁨을 습득했다.


놀거리가 많이 없던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일종의 놀이였던 게 아닌가 싶다. 알록달록 번쩍거리는 전구로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그 시기에만 들을 수 있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도 듣게 되면 아이는 물론 어른들조차 동심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이가 된 어른들은 아무 일도 아닌 것에도 깔깔대고 웃으며 온종일 크리스마스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아이였다.


이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듣기 힘들게 되어버린 크리스마스 음악을 찾아 유튜브에 접속했다. '80년대의 성탄절은 어땠을까?'라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영상 속 서울 어딘가의 거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도 추운 날씨는 마찬가지였던지 사람들은 삼삼오오 팔짱을 낀 채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촬영을 의식해서 그런 걸까? 사람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발갛게 추위에 달아오른 볼을 실룩거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왜 저 때의 사람들이 그렇게나 더 밝아 보였는지.


'그들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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