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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an 15. 2023

 시몬을 위한 변명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시몬



나는 아내와 한 달에 한번 강제 데이트를 한다. 작은 애가 한 달에 한번 하는 청소년 활동의 장소가 이시돌 목장 근처의 젊음의 집인지라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의도하지 않은 데이트를 하게 됐다. 물론 나는 아내에게 이것이 데이트라고 말한 적은 없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시간 동안 아내는 이시돌 센터의 맞은편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묵주명상을 하고 나는 그런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 산책을 한다. 아내는 세례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나는 신자가 아닌 까닭이다. 어쩌면 아내는 이 시간을 나와의 데이트가 아닌 하나님과의 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길 5처에서 아내의 발길이 멈췄다. 시몬이  쓰러진 예수님 대신에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게 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항상 시몬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나는 그가 신경 쓰였다. 왜 그럴까?


시몬은 예수님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구경을 하다 로마 병사에게 지명을 받아 마지못해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베로니카와 다르게 시몬은 성인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나는 왠지 그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베로니카가 믿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피와 땀을 닦아준 반면 시몬은 로마병사의 명령에 비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나, 당시 시몬의 진짜 심정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또한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공감을 하던 상황에 지목을 받아 스스로의 의지로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러했다면 시몬은 죽은 후에도 좀 억울해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시몬의 억울함에 이토록 공감을 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나 또한 인생을 살면서 그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용기가 없어지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특히, 자신이 한 일의 결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몇 차례 받고 나면 그러한 경향은 쇠심줄처럼 더욱 단단하게 나를 옥죈다. 


그렇다. 나는 시몬에게서 마지못해 선한 일을 하게 되곤 하는 보통의 우리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나, 그러지 못하더라도 선한 의도와 선한 결과가 용기와 적극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당하고 평가절하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로니카보다는 시몬에 가까운 나는 오늘도 시몬의 불운에 공감을 한다.


자발적인 것 여부로 베로니카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 시몬은 성인이 못 되는 건 좀 불합리하지 않아요?


베로니카는 단지 그것 때문에 성인이 된 게 아니에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훌륭한 일을 했어요


나는 그냥 내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아내의 대답에는 묘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잠시 생각한 나는 금세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내의 세례명이 '베로니카'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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