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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an 14. 2023

그 시절 나는 왜 슬램덩크를 좋아했을까?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아빠 슬램덩크 보러 가요.
작은 애가 내게 말했다.


너 슬램덩크 안 봤잖아. 근데 볼 수 있겠어?


갑자기 보고 싶어 졌어요.


그래 그럼 보지 뭐.



안 그래도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의 적극적인 추천도 있고 해서 점찍었던 영화였는데 아들이 제안까지 하니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중년 아빠의 추억 열차에 기꺼이 함께  탑승해 준다는 아들이 은근히 고마웠다.


https://brunch.co.kr/@7cd2f5f6185c429/422

내친 김에 아내에게도 제안을 했다.


당신도 같이 볼래요?
원작을 안 봤는데 봐도 될까요?
원작 안 본 사람들도 평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모처럼의 극장 나들이를 나섰다. 큰 애는 곧 학교 시험이 있어 이번 관람에는 아쉽게 지게 되었다. 다행히 영화를 다 본 아내와 아들의 표정은 예상보다 밝았다.


여운이 꽤 남는데요?
엄만 중간중간 울었어요.
회상 씬들이 몰입을 좀 방해하는 면이 있었어요.
그림이 정말 사실적이고 따뜻하더라.


영화를 본 후 오랜만의 가족 감상회가 열렸다. 나 또한 오랜만에 젊은 날의 추억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나처럼 추억이 없는 아내와 아들과연 흥미 있게 볼 수 있을까? 사뭇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보았다니 괜히 나까지 뿌듯해졌다.


내게 슬램덩크란 만화는 특이한 만화였다. 만화는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보통의 학원 폭력물로 출발한다. 애초에 농구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지만 편집부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슬램덩크는 점점 농구만화의 면모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나중에는 사실적이고 진지한 스포츠만화로 탈바꿈한다. 마치 이야기 중간에 강백호가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릴 밀고 빡빡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온 것처럼 작가는 만화의 분위기는 물론 장르자체를 확실하게 변경해 버리고 만다. 참고로 그전까지 내가 읽었던 만화 중에 주인공이 머리 스타일을 중간에 변경하고 나온 것은 이 슬램덩크가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나는 또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여타의 소년 스포츠만화의 주인공처럼 순조롭게 성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작가는 주인공의 탁월 재능이 꽃피는 과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고 노력과 시간을 들여 공들여 묘사했다. 물론, 묘사가 그렇다는 것일 뿐,  6년 연재 기간 동안 실제 만화가 그렸던 시간은 고작 6개월 정도니 현실로 말하면 기적적으로 기량이 성장한 것은 맞다. 다만, 한 경기 한 경기 주인공의 성장하는 모습을 종전의 소년 스포츠만화처럼  순조롭게 그리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자칭 천재인 주인공은 기본적인 슛을 쏘게 되기까지 천재치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잦아 시합종료 직전  애써 리바운드한 볼을 상대편에게 패스하는 실수를 저질러 팀을 패배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화려한 개인기의 서태웅의 돌파가 시작되면서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는 모두 사라지고 정적만이 감돈다. 그리고

배우들의 모션을 캡처한 3d 화면은 어느새 거친 팬터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흑백의 2d 화면으로 바뀐다. 그것은 우리가 26년 전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귤을 까먹으며 보았던 종이 만화책 그대로의 화면이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어느새 각자 26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추억의 장면한 장 한 장 넘기게 다. 급기야 영화관 속의 수 백명의 관객들은 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서태웅과 강백호의 신들린 콤비플레이를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결국, 산왕을 이기는 마지막 득점은 서태웅이 아닌 그의 화려한 패스를 받은 강백호가 하고 만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과 같은 화려한 기술인 슬램덩크는 아니었다. 그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 골밑 점프슛이었다.


개인 특별훈련으로 강백호가 무려 2만 번이나 연습한 골밑 오른쪽 45도 각도의 평범한 점프슛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슬램덩크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느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화려하고 복잡한 기술보다는 수없이 반복해 온 단순한 기본 기술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고난 재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순간을 위해 수없이 반복해 온 노력과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도.


내 빛나던 스무 살 시절을 한낱 농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만화에 빠져 살았던 이유를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부모에게서  받은 수저의 색깔을 저주하기보다는 노력과 열정, 꿈과 초심을 믿고 살아가 싶었것인지도 몰랐다. 비록 그것이 한낱 만화라는 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영화를 본 후, 나와 아들은 차 트렁크에 처박아둔 농구공을 꺼내 농구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일대일 시합을 하기 위해서였다.  앞을 가로막은 나만큼이나 키가 커버린 아들이  북산의 주장 채치수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아빤 이제 나한테 안될걸요?


얼마 내기할까?


부디, 인생이라는 코트 위에서 림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아들의 한발 한 발에 노력과 초심이, 림을 향해 던지는 아들의 한골 한골에 꿈과 열정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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