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페인의 마지막 도시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 7시에 나와 어제 일우가 코피를 쏟았던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토요일의 아침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버려진 비닐봉지 한두 개가 날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 앞 정류소 풍경
기차처럼 객실 두 개가 이어진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니 그라나다 터미널에 도착했다. 미리 구입해 두었던 승차권으로 말라가행 알사버스를 탔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를 두 번이나 들름에도 정작 그가 살던 동네는 구경조차 못하고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말라가 역에 도착한 우리는 버거킹에서 끼니를 때운 후 마드리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드리드에서 내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를 갈아탈 계획이었다. 원래 우리가 타려고 계획했던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야간열차 노선은 2016년부터 공사를 했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족히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하긴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도 100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 스페인 아닌가?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했다. 2주 만에 다시 방문한 마드리드가 새삼 반가웠다.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환승하는 시간까지는 두 시간가량 남았다. 얼른 시내에라도 다녀올까싶었지만 행여라도 기차 출발 시간을 놓칠까 걱정이 되어 그냥 역사 내부에 남아있기로 했다. 잔뜩 배가 불어올라 무겁기 짝이 없던 트렁크와 배낭 역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데 한몫했다.
편의점 릴레이(relay)를 발견한 아이들이 곧바로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그 틈을 이용해 나는 아내와 음성통화를 하기 위해 와이파이 신호를 찾아 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사 온 3기가짜리 데이터 유심으로는 음성통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한 식당 앞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혔다. 커피라도 한잔 시킨 후 와이파이 암호를 받으려고 했는데 이곳은 회원가입만 하면 암호를 따로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호가 잘 잡히는 기둥 근처에 배낭을 내리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회원 가입을 하니 다행스럽게도 바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노력에도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드리드 역에 다시 돌아온 형제들
저녁 8시 무렵이 되어서야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 도착했다. 고속열차인 아베(AVE)를 탔음에도 예정된 도착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연착이 된 것이었다. 아무리 느긋한 스페인이라도 십분 이십 분 정도는 이해가 갔지만 한 시간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났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밤에 도착하는 일정을 되도록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의 하늘은 이미 캄캄한 어둠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는 것은 새로운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해서 대강의 목차라도 파악하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낮이라면 천천히 돌아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밤에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이곳저곳 다닐 수도 없어 도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숙소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곳 역시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 아이들에게 장난치지 말고 아빠 뒤를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알았어요. 내가 아빠 뒤에 서서 나쁜 사람 못 오게 막을게요.”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제법 웬만한 어른 티가 나고 있는 일우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내 쪽에 있었다. 도시를 바꿀 때마다 발병하는 길치병이 다시 도지고 만 것이었다. 지하철을 의미하는 L1과 기차를 의미하는 R1을 헛갈려 지하철을 탈 것을 기차로 잘못 타고야 말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간신히 지하철 노선으로 바꿔 탔다. 하지만 제대로 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멘붕상태였던 나는 반대방향 열차를 잘못 탄 걸로 착각해 허겁지겁 뛰어내리고 말았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렇게 내 뒤를 따라 오르락내리락거리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우리 3부자는 달밤의 ‘생쇼’를 하고 있었다.
“ 아빠 우리 길 잃어먹은 거예요?”
일우가 내게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갈피를 못 잡은 나는 진땀을 흘리며 지도만 검색할 따름이었다.
“ 아빠 배고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혁우에게는 이 불안감과 긴장감이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지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침착하게 보니 방금 타고 내렸던 지하철이 맞는 게 분명했다. 공연히 헛고생만 톡톡히 한 셈이었다.
“아빠 배 고프다니깐요?”
“좀 참아.”
“아, 아파요. 아빠.”
나도 모르게 혁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숙소인 ‘아트 컬처 호스텔’에 도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숙소의 위치는 우리가 몇 번이나 오가며 지나친 장소였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어두운 거리인지라 호스텔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시를 가리키고 있는 커다란 시계가 우리를 맞이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나 바르셀로나 시내를 헤맨 우리였다.
카운터의 여직원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아줬다. 그제야 긴장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나를 지나 내 옆의 아이들을 보던 그녀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졌다. 호스텔 매니저에게 어린이를 재울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통화를 마친 그녀는 웃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여줬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새로운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이 밤에 다시 낯설고 어두운 거리로 나서야 할 뻔했다.
혁우는 아그네스와 있는 것이 싫었던 걸까?
순결을 뜻하는 이름인 ‘아그네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숙소 여직원은 유난히 아이들을 귀여워해 줬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와 친절함 덕분에 오는 내내 쌓였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내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을 찍은 후 그녀가 주는 메일 주소로 보내주었다. 그녀 옆에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을 보니 비로소 바르셀로나 여행이 행복한 예감으로 다가왔다.
데이터
한국에서 미리 1개월, 3개월 단위의 데이터 유심을 사가는 것이 저렴하다. 현지에서 구입하려면 상당히 비싸다. 물론 한국에서 구입한 유심에 비해서 속도도 빠르고 잘 터지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구글 지도 정도는 한국에서 구입한 유심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기에 굳이 비싼 가격으로 현지에서 구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최근 유럽의 숙소는 거의 대부분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기에 데이터가 많이 필요한 작업은 숙소에 와서 하면 된다. 만약, 그 외의 곳에서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을 이용하거나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어떤 도시에서는 공공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