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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an 25. 2023

설날 전야


여섯 명이 모인 동네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일 년에 두 번 명절 전후로 활기차진다. 예전에는 같은 동네에서 집 담벼락을 같이 쓰기도 한 사이지만 지금은 평택이며 제주며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살고 있다. 카톡에 '당구장에서 보자!'라는 메시지가 떴다. 차례상을 위한 시장을 보고 부모님 집의 형광등을 가는 등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친 나는 카톡에 나온 이름을 지도로 검색한 후 찾아 나섰다.


어, 왔어? 너도 게임 들어와.
아냐, 난 네들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


먼저 온 친구들은 벌써 다섯 시간째 당구를 치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몇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어 명절 전날에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게임이 금방 끝날 것을 기대하며 참가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당구 안치려고 했는데 애들한테 꼬심 당해서 한 시간째 이러고 있다. 완전 사기다마꾼들이야.


천남이가 투덜댔다.


나 이제 돛대니까 끝날 거야.


너 삼십 분 전부터 돛대였어.


쟤 완전 아브라함 당구야.


아브라함 당구가 뭐였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또 누구를 낳았지?
암튼 돛대에서 남은 다마 개수가 계속 늘고 줄고 무한반복 하는 걸  명호가 그렇게 표현했잖아.


오랜만에 들은 명호라는 이름, 녀석은 우리 여섯 중 병으로 제일 먼저 떠난 친구였다.


설을 쇠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

우리는 옛날의 관성대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을 보는 순간 스무 살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모두가 마치 그렇게 행동하면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때와  다른 점은 스무 살 시절에는 날씬한 몸으로 큐대를 들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면 지금은 통통한 배에 한 손에는 큐대를 다른 한 손에는 음료수 잔을 들고 엉거주춤  서있다는 점이었다.


도돌이표 같이 결론이 나지 않던 경기는 결국 마지막 남은 두 명의 합의로 간신히 끝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시력과 마찬가지로 당구 실력 역시 나이가 드는 것에 급속도로 반비례하고 있었다.


당구장에서 나왔다. 길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적당히 취기가 오른 불콰한 얼굴을 한 배 나온 아저씨들 몇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야. 두식이는 못 온대냐?
어 걔 요새 아프대잖아. 못 올라온 것 같아.
그래?


우리처럼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모양이었다. 그중 한 명이 입을 모아 가래를 뱉어내려던 찰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이내 나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바닥을 향해 그것을 힘차게 뱉었다.


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그와 나 사이를 달려 도망갔다.


설날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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