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의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by 옥상평상





"요즘 막내에게 고민이 생긴 것 같아요."


"왜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얼마 전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현재를 즐겨라.'라는 키팅 선생님의 말이 고민이 되나 봐요."


"어떻게 고민이 된대요?"


"거기에 나오는 대로 현재를 즐긴다면 계속 게임만 하고 유튜브만 보면 되는데 굳이 어려운 학교 공부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해서 말이죠."


참, 녀석다운 고민이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본 영화에서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키팅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선명하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 학교에 잠시 들른 선생님의 뒷모습을 발견한 학생들은 차례로 책상에 올라선다. 그리고 비로소 그들이 선생님에게 전하고 싶었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나 역시 슬픔과 분노를 함께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영화의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는 오역으로 인해 잘못 지어진 제목의 대표 격으로 회자되곤 한다. 원제인 'DEAD POETS SOCIETY'를 글자 그대로 번역한 수준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마지막 단어인 'SOCIETY'를 그 단어의 대표 의미인 '사회'로 그대로 직역한 데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오류였다. 어쩌면 영화를 수입한 배급사에서 이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 것을 예상 못한 데서 나온 무신경한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SOCIETY'를 협회, 모임, 동아리 정도로 번역해 제목을 다시 지어본다면 '죽은 시인들을 위한 모임'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오래전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동아리란 표현을 많이 썼는데 그 또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으니 모임정도가 가장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어쨌든 이 '죽은 시인들을 위한 모임'은 주인공인 키팅 선생님이 학창 시절 만들었던 모임으로 나중에는 그의 제자들이 다시 부활시켜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된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겨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영화를 보았던 그때 그의 이 말은 군사문화에 억눌리고 공부에 찌들었던 우리들에게 '당장 미래를 위한 공부 따위는 집어치우고 현재를 즐겨.'라는 메시지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다. 당시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이 영화를 기점으로 비슷한 메시지를 주제로 한 우리나라 영화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같은 작품들이 나오는 단초가 되었다. 이미연 배우가 주연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투캅스와 공공의 적, 실미도 같은 흥행작을 만든 강우석 감독의 신인 시절의 작품으로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있기 전 90년대 초 우리나라 영화 부흥기의 신호탄 같은 작품이 되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작은 애가 말한 대로 키팅 선생님이 말한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의 의미가 미래에 대한 준비 따위는 고민하지 말고 현재의 쾌락에만 몰두하라는 의미일까? 그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정도로 해석하면 맞는 말인 것일까? 우선 '카르페 디엠'이란 말의 연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라틴어인 '카르페 디엠'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의 저서인 송시에 썼던 말이었다. 그는 어떤 의미로 이 말을 썼던 것일까?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라, 나나 그대에게
레우코노에여, 생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바뷜론의
점성술에 묻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게 얼마나 좋으냐.
유피테르가 겨울을 몇 번 더 내주든, 바위에 부서지는
튀레눔 바다를 막아선 이번 겨울이 끝이든, 그러려니.
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김남우 역, 카르페디엠 33편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와'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였다. 사실, 이렇게만 읽으면 먼 미래 따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즐겨라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과연 호라티우스에게 이 즐긴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호라티우스가 속했던 학파인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소위 쾌락주의 학파로 번역되는 학파이다. 또한 이 쾌락이라는 말 때문에 굉장히 오해를 많이 받아온 학파이기도 하다.


사실,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말하는 '쾌락'은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쾌락이 아닌 단지, 신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뜻했다. 즉, '고통의 부재'가 그들이 말하는 쾌락, 즐거움의 전부였던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와 육체적인 쾌락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됨과 동시에 그로 인한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호라티우스가 말한 '오늘을 즐겨라'는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의미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대신 현재의 고통 없는 삶을 즐겨라.'정도로 해석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저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은 과연 이 '카르페 디엠'을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것일까?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 한 명에게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란 시를 읽게 한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시간은 흘러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질 것이다."

키팅 선생님은 다시 한번 학생에게 묻는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는 말은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지. '카르페 디엠'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오늘을 붙잡아라'입니다."

"그래 오늘을 붙잡아라. 그러면 왜 오늘을 붙잡으라고 이야기했을까?"

"그 시인의 성질이 급해서입니다."

학생 한 명이 오답을 이야기하자 키팅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왜냐면 우리는 반드시 모두 죽기 때문이지."


'카르페 디엠'은 로마의 공식언어인 라틴어이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로 번역된다. 우리 말로는 '그날 또는 오늘을 잡아라'로 정도로 번역된다. 영화의 우리말 자막에서는 '현재를 즐겨라'로 번역되었지만, 나는 '오늘을 잡아라'로 해석했다. 그것이 키팅 선생님이 말한 의도에 부합되는 해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키팅 선생님은 오늘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가 반드시 죽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즉,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므로 그때, 그 시기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붙잡으라고 한 것이었다. 키팅 선생님에게 '카르페 디엠'은 결코 무계획적인 방종이나 즉흥적인 쾌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님은 연극을 하고 싶지만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로 고민에 빠져있는 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지금 아버지에게 가서 네가 내게 한 말을 하고 너의 열정을 보여 허락을 받아내."


닐이 키팅 선생님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내게 연극은 나의 모든 것이고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에요."


하지만 닐은 아버지에게 이야기조차 못 꺼낸 채, 키팅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았다며 거짓말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닐은 멋진 공연을 펼쳤지만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아버지에게 끌려간 닐은 결국 아버지의 총을 훔쳐 그의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리고 키팅 선생님은 닐의 죽음에 대한 희생양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다.


만약, 키팅 선생님이 말한 대로 닐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내려고 시도해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키팅 선생님이 원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당장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할 수 있고 없고에 대한 판단을 부모나 학교가 아닌 자신 스스로가 결정짓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세상과 부딪혀 볼 것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물론, 닐이 그러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로 인한 시련과 좌절은 불 보듯 뻔한 일일 테지만, 자신의 판단을 토대로 한 행동과 노력이 쌓여가면서 스스로가 선택한 인생에 대한 자신감 또한 차츰 얻어 갈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아닌


'소중한 나라는 사람을 위해

오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기자.'

정도로 해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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