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아침을 열기 싫은 날이 있다. 사실 출근하는 날의 아침이야 언제나 그러하지만 유난히 더 그런 날이 있다. 가령 오늘처럼 며칠 출장을 다녀온 후 오랜만에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날은 더욱 그러하다. 내가 출근을 않는 동안 못한 일들이 책상에 가득 쌓여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 눈 뜨기 싫다.
아, 정말 일어나기 싫다.
더도 말고 이대로 12시까지만 누워 있고 싶다.
정신은 말짱한데 누운 채로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주문처럼 외우다 보면 일어나는 일은 더욱 힘들고 요원해진다. 갑자기 요즘 즐겨보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설현처럼 사표를 던지고 훌훌 바닷가가 있는 지방 어딘가로 떠나보는 상상을 한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녀가 떠난 바닷가가 있는 지방의 어딘가였다. 그럼 중년의 나는 어디로 가야지? 다시 서울로 떠나야 하나?
이렇게 잠도 다시 이루지 못한 채 쓸데없는 망상만 거듭하다 보니 정말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 임박했다. 시계를 보니 더 이상 누워있다가는 정말 지각을 할 판이다. 아프다고 말하고 하루 연가를 내버릴까? 아냐 아냐 일만 더 쌓이고 말 거야. 그나저나 아프다고 말하려니 정말 몸 어딘가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하니까 어쩌면 정신을 잘 집중하면 원하는 부위가 아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근데 어차피 연가를 낼 건데 꼭 아파야 하나? 그냥 연가를 내면 되는 거잖아. 아냐 상사가 별로 안 좋아할 거야. 조만간 진급심사도 있는데 괜히 책잡히는 일은 하지 말자.
결국, 일어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체념을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 움직이는 일은 의외로 수월하다. 그냥 기계처럼 움직인다. 나는 20년 가까이 출근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출근머신이니까.
얘들아 아빠 나가신다!
아내가 늦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 방을 향해 소리를 쳤다. 하지만, 아이들 방에서는 조그만 반응도 없다.
아, 나 늦어요. 그냥 나갈게요.
마음이 급했던 나는 현관문을 열고 그냥 나가려고 했다.
얘들아 아빠 진짜 나간다고!
다급해진 아내가 아이들 방을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엄마의 큰 소리에 새 학기부터 고등학생이 되는 큰 애가 눈도 못 뜬 채 터덜터덜 제 방에서 걸어 나왔다.
아빠, 안아 드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아내의 주도로 아침저녁으로 서로 안아주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하다 보니 차츰 익숙해져 이제는 전날 피 터지게 격렬했던 전투가 있지 않은 한 웬만하면 서로를 안아줄 정도의 경지에는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 안아줌에 영혼 따위 한 스푼도 얹혀있지 않은날도 많다. 큰 애가 엄마의 사나운 주문에 목석처럼 나를 안더니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