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도서관은 엄마와 아빠만 갔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by 옥상평상



휴일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다음 날 속이 부대낄게 걱정돼서 주말 최고의 호사인 야식도 먹지 않았건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시간은 벌써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식구들은 아직도 휴일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 도서관은 안 가는 걸까?'


2월이 되고 매주 가기로 했던 가족의 주말 도서관 모임은 고작 2주 차가 된 오늘로 끝이 날 모양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였을까? 왠지 짜증이 올라왔다. 창밖으로 겨울 답지 않게 봄날의 햇살 같은 환한 빛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내 날 것 그대로의 불편한 마음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큰 애는 어제 11시가 넘어서 들어와서 피곤한 모양이었다. 모처럼 친구를 만난다고 놀러 나갔는데 약속한 귀가시간인 10시 반에서 40분을 넘어서야 들어왔다. 큰 애가 분명히 그에 대해 사과를 했음에도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함께 소파에 앉아 친구와 만났던 일을 설명하려는 큰 애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왠지 같은 공간에 앉으면 큰 애에게 싫은 소리를 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굳은 표정에 큰 애 역시 기분이 상한 듯했다.



큰 애의 방문을 열었다. 작은 애가 자기 형 배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자고 있었다. 작은 애는 이따금씩 자기 방을 놔두고 형 방에 와서 자곤 했다. 분명 악몽을 꿨거나 뭔가 무서운 상상이 들어서 온 것일 텐데도 녀석은 단지 형의 품이 좋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제 형보다 키가 커버린 동생과 함께 누워있는 둘의 모습이 마지 거대한 뱀 두 마리가 엉켜있는 것처럼 보였다.



9시에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 먹고 농구 안 할래?



내 목소리에 큰 애가 잔뜩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못해 말을 했다.



오늘은 안 가고 집에서 할래요.



그래? 그럼 알았어.



그 정도에서 깔끔하게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뒤끝 있는 치졸한 아빠였다.



너 지난번에는 방학 동안 한번 도서관에서 살아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



그리고 동생 핸드폰 사용도 어차피 제한해 봤자 소용없으니 자유롭게 풀어주자고 해서 풀어주었더니만 지금 어떻게 됐어?



에이씨!



내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누운 몸을 뒤척이더니 화를 냈다.



너 지금 아빠한테 욕한 거야?



욕한 거 아녜요.



내 시선을 외면하고 씩씩거리는 작은 애와 나를 어이없다는 듯 쏘아보고 있는 큰 애의 시선을 뒤로한 채 방문을 닫았다. 애의 시선이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빤 도대체 쉬는 날 아침부터 왜 저러는 거야?'



바로 집을 나섰다. 발이라도 재촉해 이 복잡하고 너저분한 감정들길바닥떨궈내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서 정제되지 못한 채 굴러다니던 불편한 마음을 아침부터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잠도 깨지 못한 아이들에게 쏟아낸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오늘 아침 왜 그렇게 짜증을 낸 것일까?'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항상 내게 공부를 강조했다. 당시 어느 부모가 그러지 않았겠냐만 자수성가한 교육자였던 아버지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언제 어디서 나를 만나도 아버지의 첫마디는 '공부 안 하냐?'였다. 심지어는 어린이날조차도 내게 건넨 아버지의 첫마디는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마루에서 티브이로 어린이날 특집 만화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불호령에 방으로 쫓겨 들어가고 말았다. 그날 그 방에서 나는 내가 평생 울어야 할 울음을 모두 쏟아냈다. 당시 나는 고작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아빠가 된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아버지처럼 키우지 않기'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아이들과 시시때때로 여행을 갔으며 평소에도 되도록이면 공부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우면 언젠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는 강력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매 순간 공부를 강요했던 아버지는 나의 반면교사였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될 시기가 된 아이들은 여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간신히 끝내고 나면 지친 아이들은 유튜브나 게임에만 몰입했다. 학원이 너무 힘든 것 같아 '그만 두면 어떨까?'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어쩌면 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욕심, 결국 욕심이었다. 오늘 아침 일은 한 번도 아이들이 약속하지 않았던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나만의 기대와 욕심이 충족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예전부터 줄곧 쌓여 조바심과 불안감이 최근에 이르러 원망과 화의 형태로 터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도서관은 엄마와 아빠만 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기대를 거둔 채
기다리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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