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할 놈은 할 거고, 안 할 놈은 안 할 거고.

주말 아침, 도서관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나눈 평화로운 가족의 대화

by 옥상평상


우리 집은 최근 아내의 결정에 따라 주말 아침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고 싶지 않아 하는 큰 아이 때문에 집사람이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덕분에 주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나 역시 도서관 행렬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주말 아침 도서관으로 나갈 때마다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9시에 출발하기로 한 아이들은 9시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고 5분만 10분 만을 외치며 꿈쩍을 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목소리를 높이며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고 그제야 아이들은 괜히 가기로 약속했다며 투덜대며 씩씩거리고 일어난다.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왠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라서 말이다. 소파에 앉아 아이들이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애들 학원도 그렇고 요즘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녜요?


고등학교 올라가면 다 그 정도는 시켜요.


그래도 아이 의지가 중요하지 그냥 학원만 보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큰 애도 다 동의한 거예요.


그게 자기가 말하니까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걸 수도 있어요.


아뇨. 이번 1학기 동안 열심히 해본다고 본인이 얘기했어요. 그리고 뭣보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해보고 결정해야죠. 뭐라도 해볼 수 있을 때 하지 않고 나면 후회가 남으니까요.


그러긴 하는데 왠지 그 말이 아이가 아닌 당신 스스로 한테 하는 말 같아서 그래요. 큰 아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죠.



말을 마친 나는 잠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미안했다. 사실 학원을 알아보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는 뒷방 늙은이처럼 뒷짐 지고 앉아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나 스스로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요.



그 말을 남긴 아내는 먼저 소파에서 일어났다




도서관으로 가는 차 안이었다. 아이들은 뒷좌석에 누워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시간은 이미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아.. 너무 피곤하다. 도서관에 가서 좀 자야지.



큰 애가 한껏 졸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큰 애의 그 말이 내 몸 어딘가에 있던 뇌관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시선은 큰 애가 아닌 아내로 향했다.



이제 아침마다 도서관에 데리고 가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애들도 나도 편안하게 쉬고 싶은데 괜히 도서관 가는 것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당신과 아이들 사이도 안 좋아지는 것 같고. 어차피 공부할 아이들은 뜯어말려도 하는 거고 공부 안 할 아이들은 아무리 옆에서 도와줘도 안 하게 되어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큰 애가 우렁찬 목소리로 치고 들어왔다.



"내가 공부 안 한다고 했어요? 그냥 좀 가서 쉬었다가 공부한다고 한 거잖아요!!"



큰 애의 외침에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올린 내 글에 달렸던 한 작가님이 쓴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떠올랐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좋아하는 작가님의 댓글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날이 선 채로 아프게 읽혔다. 물론 작가님은 추호도 그런 의도로 쓰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댓글의 말미에 붙은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어차피 공부할 애들은 뜯어말려도 할 것이고 안 할 애들은 때려죽여도 안 한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팠는지 잘 이해가 안 되다가 지금에야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그 말이 사실임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다는 것과 별개로 그 말은 차마 내 아이에게는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내게 있어 그 말은 일종의 봉인된 말이었고 실수로 라도 아이들을 향해 봉인이 풀릴까 조심해 왔던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게 되는 순간 내 아이는 확실하게 때려죽여도 안 할 놈이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봉인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아이에게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아이가 듣도록 말을 했으니 봉인을 푼 건 푼 거였다. 어쩌면 작가님이 쓴 댓글의 영향이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했던 나의 속내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넌 어차피 안 할 놈이니까 이제 네 알아서 해. 난 포기할게.



그리고 그런 얄팍한 나의 속내는 이내 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시는 저와 같은 말을 아들 앞에서는
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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