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태국의 방콕으로 왔다. 바틱 에어아시아 항공기를 이용하였는데 출발 직전 갑자기 지연을 알려왔다. 뭐, 우리나라에서도 간간히 일어나는 일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시간을 확인하는데 젠장, 자그마치 3시간이나 지연이다. 항공기는 두 시간을 타고 가는데 3시간을 지연하다니. 그것도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말이다. 외국에 나오면 관공서든 민간이든 우리나라의 서비스가 훌륭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 결과로 우리는 서로에게 편안하고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제발 돈 줬으니 돈 값을 해야지'나, '내가 세금 냈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같은 말은 서로에게 던지지 말자. 천민자본주의의 발상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서로는 물론 결국 자기에게도 독이 될 뿐이다. 최선을 다해 정당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서로에게는 감사해하고 격려를 해야 한다.
이른 새벽, 배송을 해주는 택배 기사부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결재해 주는 직원까지 우리 일상의 곳곳에는 감사해야 할 대상 투성이다. 내가 지불하는 돈은 그저 매개체일 뿐이다. 만약 돈만 존재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그들이 없다면 종이조각에 불과한 돈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여러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서 그런지 다들 영어를 잘했다. 한 때 국제 무역항이었던 말라카에서는 76개의 언어가 통용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으로 서로에게 불친절했다. 한 번은 공항의 경찰에게 간단한 사항을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걸음도 멈추지 않고 내 질문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지나갔다. 또 다른 청소를 하는 직원에게도 다른 질문을 했는데 역시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던 그는 나의 간단한 질문에도 무성의하게 대답하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는 내가 묵었던 4성급 호텔의 프런트 직원조차도 불친절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그것은 불친절이 아니라 그저 일상을 지탱하는 문화인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오랜 내전의 상처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무의식에 이어져 내려오며 서로에게 방어적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을 망가뜨리는 최선의 방법인 까닭이다.
태국에 넘어와서 이곳 사람들에게 놀란 것은 이들의 미소였다. 솔직히 발리 사람들의 미소가 보다 순진한 미소에 가까웠다면 이들의 미소는 물건을 팔기 위한 가식의 미소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미소 정도로 해두자. 하지만, 웃지 않는 냉랭한 세상 속에 있다가 오게 되니 그 가식적인 미소조차도 내게 따뜻함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태국 사람들은 국제 관광지라는 명성에 비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드문 편이었지만 설령 영어를 못하는 경우라도 번역기를 돌려서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태도가 고맙게 느껴졌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손님이 와도 본체만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태국의 상점들은 일단 손님이 들어서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응대를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본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손님을 응대하는 체계화된 매뉴얼이 있고 없음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진심이 아닐 바에는 아예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생각건대 적어도 미소의 경우에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형식적 또는 가식적인 미소라도 미소에는 분명히 사람의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