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부다페스트
11살 일기
기차 안에서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을 봤다. 유럽 사람들은 모두 조용한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9살 일기
헝가리 여자애가 이어폰도 안 끼고 스마트폰을 보는 걸 봤다. 부러웠다.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날이었다. 트램을 잘못 타는 바람에 그만 빈 중앙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고 말았다. 다행히 그 사실을 빨리 발견해서 바로 내릴 수 있었다. 구글 지도 덕분이었다. 구글 지도가 아니었다면 한참이 지나서야 잘못 탄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뻔했다. 심하면 열차를 놓칠 수 도 있었던 일이었다. 새삼 구글 지도가 고마웠다.
부다페스트행 열차에 올랐다. 좌석에 짐을 풀고는 바로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황당하게도 내 자리에 웬 청년이 앉아있었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싶어 티켓을 꺼내 좌석번호를 확인했지만 아무리 봐도 내 자리가 분명했다.
"미안한데, 여기 제 자리인데요."
청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게 자신의 표를 내밀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매우 무례하고 거만했다. 그의 표를 살펴보니 역시나 그가 잘못 앉은 것이었다. 그의 표에는 바로 뒷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표를 보여주며 표에 적힌 뒷 좌석 번호를 짚어 주자 그가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과라도 하는가 싶어 얼굴을 보았지만 냉랭한 표정의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지나쳐 자신의 자리로 갔다.
"아빠, 저 사람 왜 저래요?"
그 광경을 보던 일우 역시 이상했는지 한마디를 했다.
"글쎄다. 뭔가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내가 그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 뒷자리로 헝가리 사람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손녀가 앉아 있었다. 손녀는 태블릿 PC의 볼륨을 크게 한 채, 킬킬거리며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또한 한참을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고서 이제 좀 조용히 있나 싶더니 조금 전 내 자리에 앉았던 청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통화하던 때와 똑같은 최대 볼륨이었다. 내게는 세상 제일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던 청년이 할머니와는 너무도 유쾌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일우에게 이야기했던 다른 안 좋은 일이란 아마도 나를 만났던 일인 모양이었다. 몹시 불쾌했다. 객실 안은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거의 그네들이 전세를 낸 것 같았다. 이런 식의 공공장소에서의 소란은 그동안의 유럽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사뭇 당황스러웠다.
"헝가리 사람들은 원래 저렇게 시끄러워요?"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되는데 다른 사람 방해되게 왜 스피커로 듣는 거지?"
학교에 체험학습 보고서로 제출하기 위해 열심히 일기를 쓰던 일우와 혁우 역시 신경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려니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해보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우리는 두 시간이 넘는 운행 시간 동안 세 헝가리 남녀노소의 생방송 '볼륨을 높여라!'를 고스란히 강제 청취하며 가야 했다. 헝가리의 첫인상은 그렇게 불쾌하게 다가왔다.
부다페스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빈 역에서부터 같이 타고 왔던 한국인 신혼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 환전을 못해서 그러는데 부다페스트 교통권을 신용카드로 살 수 있을까요?"
"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간혹 카드 위조 사건이 발생한다고 하니 조심하셔야 될 거예요."
" 자기야 어떻게 하지?"
카드 위조 이야기를 꺼내니 신혼부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여기 부다페스트 역에도 환전소가 있다고 하니 환전해서 교통권을 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 알아보니 여기 환전소는 환전 수수료가 높다고 해서요. "
" 음, 그러면 이곳에서 조금만 환전해서 교통권을 산 다음에 시내에 나가 수수료가 공짜인 환전소를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
신혼부부가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며 내게 인사를 했다.
"아빠, 부다페스트 처음 온 거 아니에요?"
"응"
"근데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모처럼 감탄을 하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큰 아들에게 차마 조금 전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 얻은 지식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