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바이크는 정말 맥주로 움직이는 걸까?

영웅광장-뵈뢰슈머러티광장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사람들이 비어 바이크를 타는 걸 봤다. 아빠는 우리들이 맥주를 마실 수 없어서 탈 수 없다고 한다. 혹시 맥주로 움직이는 건가? 어른이 되면 꼭 타봐야겠다.


9살 일기

다음부터는 슈트케이스를 끈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구글 지도를 열었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다행히 걸어서 30분 정도였다. 일단 이곳에서는 환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까 신혼부부에게는 환전을 권유해 교통권을 구입하게 했지만 역에서 숙소가 멀지 않은 우리는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나마 도로 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끄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아빠, 내가 끌게요."


웬일로 혁우가 슈트케이스를 끌어보겠다고 한다. 못 이기는 척 혁우에게 손잡이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혁우는 두 블록 정도 힘차게 끌고 가더니 금세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힘들면 이리 줘. 아빠가 할게."

"아냐, 형이 할게."


하지만 무슨 오기인지 혁우는 대답도 않고 묵묵히 앞질러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나와 일우는 빙긋 웃으며 모르는 사람처럼 혁우를 앞서 나갔다.


"아빠, 같이 가욧!!"


혁우의 짜증 섞인 고함 소리가 낯선 도시의 골목에 울려 퍼졌다.

몇 번을 헤맨 끝에야 가까스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마에 흘린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헝가리 대사관 옆에 위치한 4성급 호텔이었다. 관광 중심지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꽤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리셉션 직원은 반갑게 우릴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체크인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손님 맞을 준비는 덜 되어 있었다. 소인용 침대를 추가로 설치할 때까지 우리는 십 분이 넘게 더 기다려야 했다. 설치 완료 전화를 받은 직원이 우리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밝고 유쾌한 그의 행동이 기차를 타고 오면서부터 쌓여왔던 내 스트레스를 누그러 뜨려 줬다. 객실 역시 넓은 테라스 위로 햇볕이 쏟아지는 밝은 방이어서 좋았다. 덕분에 부다페스트로 오면서 쌓였던 내 스트레스는 말끔히 사라졌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는 인근에 위치한 영웅광장으로 향했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천 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으로 36m 높이의 밀레니엄 기념탑이 서 있고 그 꼭대기에는 왕관과 십자가를 들고 있는 가브리엘 대천사상이 놓여 있었다. 그 아래로는 헝가리 건국의 주역인 마자르 7부족장의 기마상들이 있었다. 다시 기념탑 양쪽으로는 성이슈트반 성당이 이름을 딴 이슈트반 왕을 시작으로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 헝가리의 독립을 주도한 역대 왕과 영웅 7명의 청동상이 서있었다.

영웅광장의 모습

헝가리의 언어는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말과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으로 분류된다. 다른 유럽 언어와는 다르게 성을 앞에 이름을 뒤에 쓰며 생년월일 중 연, 월, 일의 순서를 큰 것에서부터 작은 순으로 쓰는 것 역시 우리말과 같다. 또한, 의미를 확장함에 있어 영어와 같은 유럽어가 전치사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조사를 사용하는 것 역시 우리말의 원리와 유사하다. 헝가리어로 아버지를 ‘아푸’, ‘아푸치’, ‘아파’라고 하는 등 몇몇 단어의 발음에서도 역시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고 한다.

'부다페스트'라는 글자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다른 관광객들처럼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침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어서인지 광장 주위는 굉장히 복잡했다. 우리는 얼른 부다페스트 중심지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전히 환전을 하지 못한 상태였던 우리는 트램이나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체력적으로는 다소 힘이 들겠지만, 첫날 돌아다니며 대략이나마 부다페스트 중심의 모습을 그려볼 계획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 중 숙소에 도착한 첫날은 대체로 걸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다. 아이들 역시 걸어 다니는 것에는 이제 이골이 난 모양인지 싫은 표정 하나 없이 오히려 앞장서 나아갔다.

토요일의 헝가리 사람들에게선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사람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밝고 쾌활한 기운이 느껴졌다. 본래 기질적으로 활기찬 탓도 있겠지만, 화창한 날씨의 주말이라는 것이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저거 봐요!”


안드레시 거리를 지나가는데 나와 아이들의 눈에 낯선 탈 것이 들어왔다. 오크통이 앞에 매달린 비어 바이크를 탄 젊은 청년들이 맥주를 마시며 굵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아빠, 우리도 타요!"

"너희들은 아직 맥주 마실 나이가 아니라서 못타."


아이들이 타고 싶다며 졸라댔다. 검색해보니 주말 두 시간 동안 타면서 맥주 20리터를 먹을 수 있는 이용요금이 4만 포린트, 우리 돈으로 20만 원 정도였다. 거의 맥주값 정도로 어른들이 탄다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닐 테지만,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가볍게 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일우가 아쉬운 듯 비어 바이크가 사라지는 방향 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다음에는 형제들과 같이 비어 바이크를 탈 수 있으려나?

옥토곤(oktogon) 역에 도착했다. 근처 맥도널드에서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하는데 기다리는 줄이 어마어마했다. 하는 수 없이 비교적 한가한 바로 옆 서브웨이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성실한 얼굴의 잘생긴 청년이 친절하게 샌드위치 사이에 들어갈 재료를 영어로 물어왔다. 그의 자세한 설명 덕에 어렵지 않게 샌드위치 주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중년의 동양인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은 피부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일반적인 동양인 관광객들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는데 반해, 마치 조폭 같은 분위기의 이 남자는 서툰 영어임에도 큰 목소리로 거침없이 청년에게 물어왔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도리어 영어에 능숙한 헝가리 청년이 쩔쩔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참 동안 청년에게 메뉴의 내용물 따위 같은 것을 묻던 그는 마음에 드는 샌드위치가 없었는지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같은 광경을 봤다면 분명 무례하기 짝이 없는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여겼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 이역만리 유럽에서 그와 같은 장면을 보게 되니 묘한 통쾌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백인 청년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동양인인 또래 남자가 백인 남자에게 거침없게 구는 모습은 내게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안겨주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두 달 가까운 여행기간 동안 유럽 사람들을 만나며 꽤나 주눅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오전에 열차에서 만났던 헝가리 청년이 떠올랐다. 조금 전의 그처럼 당당하게 굴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사실, 언어의 제약은 핑계일 뿐이고, 정답은 태도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영수증에 인쇄된 비밀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화장실이 열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아르바이트 청년이 비밀번호를 영어로 천천히 불러주었다. 덕분에 간신히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용변을 볼 수 있는 한국의 화장실이 그리워졌다. 청년에게 고마운 한편 아까 느꼈던 통쾌함이 다시 한번 미안해졌다.



다시 길을 나서 걷는데 아까 환전을 알려줬던 신혼부부가 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곳이 그들이 묵는 숙소인 모양이었다. 호텔 표시가 없는 일반건물인 걸로 보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민박으로 보였다. 한국 민박이 있는 것을 보니 이제 확실히 시내 중심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내 중심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출출해졌다. 하지만 이곳은 유로가 통용되지 않기에 뭐라도 사 먹으려면 우선 헝가리 돈인 포린트로 환전해야 했다. ‘exchange'란 푯말에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환전소는 수수료가 싼 곳이라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났다. 이곳에서 환전하기로 했다. 환율이 1유로에 300 포린트인 까닭에 100유로를 내고 30000만 포린트가 넘는 돈을 받았다.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수수료도 부다페스트 역에서 했으면 몇 천 원이었을 텐데 몇 백 원 정도밖에 지불하지 않았으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당시 공용어인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고 헝가리어로 작품을 썼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뵈뢰슈머르티 동상이 있는 '뵈뢰슈머르티 광장'에 들어섰다. 광장에는 흥겨운 헝가리 전통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노점에서 통돼지 바비큐를 구우며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광장 전체를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통음식을 파는 부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유명한 헝가리 수프인 굴라쉬를 주문했다. 이 식당의 굴라쉬는 빵으로 용기를 대신해 수프를 다 먹은 후 빵까지 먹을 수 있게 한 점이 특이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빠네 굴라쉬'정도 랄까?


"아빠, 육개장 맛 같아요."

"그러게, 너 좋아하는 해장국 같기도 하네."


해장국이나 육개장 같은 국이나 찌개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는 일우는 빵까지 몽땅 먹어치웠다. 하지만 혁우는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한 수저 뜨고는 옆 부스에서 파는 소시지만 넋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형제들은 식성마저 많이 달랐다. 하는 수 없이 혁우가 먹던 굴라쉬는 내가 먹고 소시지를 새로 사서 혁우에게 줬다.

일우가 좋아했던 '빠네 굴라쉬'

국물 음식을 먹고 나니 소변이 급했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근처 마트에서 찾은 유료 화장실에 우리 돈 1000원을 내고 볼 일을 봤다. 유럽 여행이 두 달이 다 되어 갔지만 화장실에 내는 돈은 여전히 너무 아까웠다. 화장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려는데 공연장 뒤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공중화장실이었다. 조금만 덜 급했어도 금세 찾을 수가 있었던 위치였다. 화장실 요금으로 낸 1000원이 너무 아까웠다.


"아빠, 왜 그래요?"

"아냐, 아무것도."


왠지 사실을 이야기하면 일우에게 혼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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