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일기
프라하 투어를 했다. 비가 와서 추웠지만 재미있었다. 특히 천문시계가 신기했다.
9살 일기
커다란 시계에 매달린 해골인형이 무서웠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시내투어를 계획한 날이었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당일 바로 진행할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런 조건에 맞는 투어가 있었다. 통상 인원 파악을 위해 미리 예약을 받는 일반 투어와 다르게 오늘 신청하는 투어는 미리 예약할 필요 없이 출발 장소에 가서 있기만 하면 되는 부담 없는 방식이었다. 투어 참가비 역시 투어를 마친 후, 그 만족도에 따른 액수를 지불하면 되었다. 이용자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는 이 방식은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존중하는 측면이 강했지만 그 권한의 양만큼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너무 적게 줬다고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
'미련하게 나만 너무 많이 준 건 아닐까?'
'조금 더 넣어줄 걸 그랬나?'
몇 해전 미국 여행을 하면서도 제일 큰 고민 역시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일이었다. 유럽의 경우 10% 안쪽의 정해진 팁의 요율이 있어 큰 고민 없이 지불했지만, 미국의 요율은 상대적으로 들쭉날쭉했기에 팁을 지불하고서도 종업원의 눈치를 살피는 등 항상 개운치가 않았다.
인간이 자유를 그리워하면서도 때때로 그 자유를 버거워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같이 결정장애가 있는 보통의 인간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자유보다는 고민을 안겨준다. 보통의 인간은 감당 못할 만큼의 자유보다는 적당히 제한된 자유를 좋아한다. 그것은 일종의 속박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속박하면서 그 제한된 공간 안에서 안정감과 자유를 느낀다.
투어 모임 장소는 시민회관 앞이었다. 비가 제법 내렸던 까닭에 모두 우산을 쓴 상태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우산을 사지 않았다면 크게 난감했을 상황이었다. 우산 세 개가 필요했던 까닭에 나는 빈에서 아내에게 선물로 산 비닐도 뜯지 않고 보관했던 클림트의 그림이 프린트된 우산을 꺼내 썼다.
가이드는 이국적인 외모에 건강한 느낌을 주는 여성분이었다. 아이들은 이번에도 가이드 이모를 마음에 들어 했다. 가이드 옆에 바싹 붙어서 그녀의 설명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는 형제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우리가 모인 시민회관 건물에는 1200석 규모의 스메타나 홀이 있었다. 스메타나는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로 '나의 조국'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곳 스메타나 홀에서 프라하의 음악축제인 '프라하의 봄'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린다. 개막식에서는 매년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장엄하게 연주된다.
시민회관 바로 옆에 위치한 화약탑은 원래는 우리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구시가로 들어오는 13개의 출입문 중에 하나였다. 루돌프 2세 때 연금술사들의 연구소이자 화약저장소로 쓰이면서 화약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화약탑을 비롯한 프라하의 건물들의 벽면이 거무죽죽한 이유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재 속에 철의 함량이 높은 까닭이다. 오랜 시간 동안 돌로 만든 건물 속의 철 성분에 녹이 생기며 검은빛을 띠게 된 것이었다.
석재 속의 철 성분이 녹이 슬며 거무죽죽해진 화약탑의 모습카를 4세에 의해 14세기에 세워져 현재까지도 대학교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명문 카를대학교를 지나 하벨 시장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과일과 채소를 주로 판매하는 일반 시장이다가 주말이 되면 마리오네트나 그림, 유리공예품 따위의 잡화를 파는 시장으로 모습을 바뀐다.
"과일은 비싸니까 이곳에서 사드시지 마세요."
과일을 사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녀의 말을 들으니 아예 그 생각이 없어졌다.
드디어 사람들이 별처럼 많이 모여있는 천문시계탑 광장에 도착했다. 1410년부터 작동되었다는 천문시계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천동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저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간된 것이 1543년이었으므로 천문시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우주가 회전한다는 천동설의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이 천문시계를 향해 모여있었다. 매시 시작되는 천문시계의 퍼포먼스를 보기 위함이었다. 천문시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천동설을 기반으로 한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한 칼렌다륨이 위에 있고 황도 12궁의 별자리와 그 시기해야 할 농사일을 알려주는 플라네타륨이 그 아래에 있다. 매 시간 정시가 되면 칼렌다륨의 왼쪽에 달려있는 해골 인형이 종을 치면서 죽음의 때가 왔음을 알리면 바로 옆에 있는 쾌락을 상징하는 악기를 든 투르크인과 오른쪽에 있는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들고 있는 귀족 인형과 탐욕을 상징하는 황금 주머니를 들고 있는 유대인 인형이 일제히 고개를 저으며 죽음을 거부한다. 이어, 위쪽 가운데에 위치한 두 개의 창으로 12명의 사도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황금색 닭이 정시가 되었음을 알린다. 그 어떤 세속의 화려한 것들도 닥쳐올 죽음의 시간만은 거부할 수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천문시계는 매 시간 보여주고 있었다.
칼렌다륨 양 옆에 있는 해골인형과 투르크인, 유대인과 귀족의 모습'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로마 시대,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이 행진을 할 때 노예들이 뒤에서 한 목소리로 외쳤던 말이라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전쟁에서 이긴 자신감이 허영과 자만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인생을 보다 겸허하게 맞이 할 것을 권유하는 로마의 이 말은 천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해 천문시계 속 해골조각의 모습으로 프라하 사람들의 마음을 각성시키고 있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가이드 분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형제들 역시 그에 부응해 마지막까지도 그녀의 설명에 집중했다. 투어가 종료된 후, 나는 가지고 있는 지폐를 모두 드렸다. 하지만, 자꾸만 그녀의 노력과 열정에 비해 부족하게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ATM기에서 현금을 찾아 다시 드릴까도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듯했다. 미안함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금액이 정해져 있으면 이렇게 찜찜할 일도 없을 텐데.'
나는 역시 사소한 선택에도 괴로워하고 마는 보통의 인간이었다.
별자리와 농사일을 알려주고 있는 플라네타륨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