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동전교환기는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부다페스트- 프라하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아빠한테 헝가리 동전을 받았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프라하에서도 동전을 달라고 해야겠다.



9살 일기

이동하는 날은 너무너무 힘들어.




“아빠 쓰고 남은 헝가리 동전 전부 나 줘요.”

“왜?”

“어차피 이제 못 쓰잖아요.”

“응, 마트에서 물건 사고 남으면 몇 개 줄게.”


잔돈을 남김없이 쓴다고 노력했지만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가 꽤 남고야 말았다. 어제 유람선을 타기 위해 ATM기에서 돈을 뽑다가 불안한 마음에 조금 더 인출한 것이 화근이었다. 부다페스트 중앙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큰 마트에 들러 열차에서 먹을 간식거리 따위를 샀다. 돈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사탕이며 젤리 같은 필요 없는 물건까지도 마구 사게 되고 말았다. 덕분에 남은 잔돈을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아 이것밖에는 주지 못하겠네."


나는 미처 쓰지 못한 작은 단위의 동전 몇 개를 일우의 손에 올려줬다. 일우는 더 많이 받을 것을 예상했는지 실망하는 눈치였다.


기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문제는 좌석에서 발생했다. 좌석의 배치가 당황스럽게도 낯선 중국인 가족 세 명과 나란히 마주 보고 가야 하는 자리였다. 의자의 방향을 돌려보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어디에서도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장치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당장 프라하까지 가는 몇 시간 동안 처음 보는 서로의 얼굴을 어색하게 쳐다보고 가야만 할 상황이었다. 이상한 것은 우리 좌석을 제외한 다른 좌석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객실의 구조 등의 이유로 이곳만 마주 보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더군다나 다른 좌석은 여기저기 비어있는 한가한 상황이었다. 의문이 생겼다. 다른 자리도 비어있는데 왜 굳이 우리를 이 자리에 몰아넣은 것일까?


가끔 유럽의 호스텔 같은 곳에서 동양인은 동양인대로 서양인은 서양인대로 따로따로 방을 배정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름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같은 문화권으로 묶는다는 것이 이유인데 좀처럼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 그 하나가 관리의 용이함을 위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며 다른 하나는 유색인종과 섞이고 싶지 않다는 인종 차별적인 이유였다. 한동안 미국 정부가 흑인에게 실시했던 '분리하되 평등하게(separate but equal)'와 같은 맥락일지도 몰랐다. 막상 그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으려니까 민망함을 넘어 불쾌감까지 들고 있었다. 좌석을 예약해 준 인스브루크 중앙역 직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게는 따뜻하고 친절한 직원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가 짓고 있던 웃음이 비단 친절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리를 바꿔 앉는 것은 어떨까요? "


고민 가득한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국인 남성이 그와 나를 중심으로 복도 양 옆으로 나누어 앉자며 제안을 해왔다. 왼쪽 창가 좌석에는 일우, 혁우가, 오른쪽 창가 좌석에는 그의 부인과 딸이, 그리고 가운데 자리는 그와 내가 마주 보며 앉게 하는 탁월한 제안이었다.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우리 아이들과 그의 부인과 딸은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그와 나만이 서로의 무릎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어색한 소개팅 자리를 이어갈 뿐이었다.


프라하 역 내부의 모습

프라하 역은 몇 해 전 왔을 때와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그때는 딱 하루 그것도 낮에만 머물렀다. 전날 밤, 독일 뮌헨에서 출발해 아침 여섯 시에 프라하에 도착한 후, 다시 저녁 9시에 빈으로 향하는 야간기차를 탔던 험난한 일정이 떠올랐다. 그에 비하면 이번 일정은 자그마치 3박 4일이나 되는 넉넉한 일정이었다. 왜 이렇게 긴 일정을 잡았을까? 어쩌면 1박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아쉬움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3년 전에는 젊은 여행객들이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왁자지껄 잡담을 나누고 있었던 프라하 역사였건만,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한산했다. 최근 유럽에서 몇 차례 발생했던 대규모 테러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여행하는 도중 유럽 곳곳에서는 기관총을 든 중무장 군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기술의 발달은 세상을 물리적으로 점점 가깝게 하고 있었지만, 깊어만 가는 인종과 종교적인 갈등은 정서적인 거리를 그에 반비례해 점점 멀게 만들고 있었다.


교통권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전을 해야 했다. 프라하가 수도인 체코 역시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유로화'가 아닌 '코루나'라는 고유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프라하의 교통 요금은 거리로 계산하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시간 단위로 표를 끊어야 했다. 일정 부피 이상의 짐을 가지고 이용하려면 별도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일정 부피라고는 하지만 여행객들이 가지고 다니는 대부분의 트렁크 크기는 거의 모두 해당되었다. 단, 1일 권 이상의 티켓을 끊으면 별도의 짐에 대한 요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짐이 많은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1일권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프라하 교통권 판매기는 지폐나 카드를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동전만 사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처에 동전교환기라도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프라하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폐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박’이라고 부르는 편의점을 찾아 그곳에서 표를 구입해야만 했다. 하지만, 담배를 뜻하는 이름의 상점 '따박’이 모든 교통권 발매기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기권이나 교통카드를 사용해 동전을 교환할 일이 거의 없는 프라하의 시민들이야 별 문제가 없을 테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었다. 관광객들의 불편을 봐서라도 동전교환기 정도는 설치할 법도 한데 프라하의 교통 시스템은 몇 년 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무슨 이유일까? 워낙에 변화의 속도가 느린 유럽이라지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따박'같은 소규모 상점들을 배려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일 수도 있었다. 교통권을 사려는 관광객들에게 껌이나 물 같은 자잘한 상품들도 함께 구입하게 해서 서민 경제의 활성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고도의 정책적 고려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프라하 공무원들의 단순한 게으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의 전경

답: 동전교환기는 간혹 기차역 코인로커 또는 화장실 부근에 숨어있기도 함.


2017.4.11.부다페스트-프라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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