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review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자연히 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마치 당연한 일이듯 낯선 땅에 낯선 여관의 지붕 물구덩이 속에서 한겨울에, 돈가스 덮밥과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아아, 달이 너무 예쁘다."
우연하게 만난 이 한 단락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일본의 어느 한적한 골목같이 평화로운 바나나의 문체. 화려하진 않아도 소곤소곤 간질거리는 다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얼마나 순간순간을 따뜻하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하고 내심 놀랐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 살고 그래서 별 감흥이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 일상이 부서질만한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 뿌연 일상에 기대 살고 마니까. 그러니까 지금 좀 더 생경하게 느낄 필요가 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어둠은 이렇게 깊고... 그런 거
"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다만, 이렇게 밝고 따스한 장소에서,
서로 마주하고 뜨겁고 맛있는 차를 마셨다는 기억의 빛나는 인상이 다소나마 그를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어란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불쑥 찾아오는 상실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일상적이기까지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어느 소설과도 겨룰 수 없는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책의 갈래인 키친, 달빛 그림자, 만월에서 그 상실의 순간을 일상적이지만 특별하게 그려낸다.
아픔을 겪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다시 힘을 낸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기적적인 일이리라. 하루하루가 지난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저 여러 가지 일들로 울고 싶어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 상실을 겪고 또 회복한다.
이것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표현하는 투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따뜻한 차와 빛나는 인상으로 표현하는 다정한 사람도 있다. 현실에서는 표현이 투박하든 다정하든 위로를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겠지만, 책에서는 아무래도 다정한 편이 좋아.
+) 놓치고 싶지 않았던 문장이 많아서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맥주랑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라 취한 상태로는 속도 조절이 어려웠다는 후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형을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는 주제에,
반사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그 냉담함과 순진함에 나는 항상 투명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