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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녹 Jan 13. 2021

인간 실격_다자이 오사무

책/review

인간 실격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심하고 찌질한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요조는 그 천진한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익살이라는 가면으로 거짓말을 일삼는다. 머리가 좀 커졌을 때는 집안의 감시를 피해 학교를 빠졌고, 술과 약에 중독되어 흘러가는 구름처럼 여기저기서 정부 역할을 하며 겨우 살아간다.

결국 27살의 나이에 백발이 성성해진 채 살아가게 되는, 어찌보면 기만적이기도 한 죄 많은 광대의 삶. 부끄러운 삶의 수기다.


하지만 마냥 화가 나는 한심함은 아니었다. 분명 답답하고 찌질한 행동들이었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이해되는 면면들이 있었다. 

그의 행동들은 밖에서 보면  반항에 가까운 그것이지만, 그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반점으로 계속 이어지는 그의 불안한 심리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마저 들기에.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며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라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인간을 속여서 '존경받는다.'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도 그 사람한테서 듣고 차차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들의 노여움이며 복수는 정말이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상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을 가장 큰 공포로 보았으나 인간을 향한 구애는 멈출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고, 믿지 못한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 바로 인간의 무구한 신뢰, 순수함, 사회와의 융화였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무서워하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자 익살꾼을 자처했다. 자기가 정부로 살고 있는 가정의 행복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제 발로 그 집을 뛰쳐나와 버린다. 믿고 있던 친구와 가족이 그를 강제로 정신 병원에 가두는 순간에도 그저 무저항으로 일관한다.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한다고 한 것처럼, 어쩌면 그의 삶은 처절한 방어기제로 이루어져 있다.

결코 두려운 인간들을 단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심한 그의 일생은 자기 자신을 가장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기인했다. 그 결과는 자기 혐오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다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치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하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잊어버렸고 자동차를 탔고,

여기에 끌려와서 정신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나가도 저는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혀 있겠죠.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왜 인간을 향한 사랑이 인간실격으로 이어진 것일까?

그는 아마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이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현재의 시선으로 한심한 그의 생애를 끝까지 변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도 사람들이 무서울 때가 있다. 날 평가하는 사람들,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당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결국 그 상황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게 된다.

분명 나에게 잘못이 있으니 주변이 날 힘들게 하는 거겠지. 내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지겠지. 

너무 착한 것이다. 요조가 너무 순수하고 착했을 뿐이라는 주변 인물의 말처럼.


이 모든 것은 개인이 나약한 탓인가, 사회가 개인을 몰아가는 것인가.

개인과 사회, 무엇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무래도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 이름은 헤노모틴이라니.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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