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나를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언제 힘들고, 언제 행복한지를.
워낙 즐거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저 닥치는 대로
즐거움을 좇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었기에 몰랐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이제는 즐기기만 해선 안 된다는 걸 배우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아이는 좋든 싫든 부모의 행동과 감정을 그대로 닮아간다.
화를 낼 땐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든지,
기분이 나쁘면 동생에게 소리를 빽 지른다든지,
장난감을 어질러 놓고는 정리하지 않는다든지,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치우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난다든지,
벗어 놓은 옷을 뒤집은 채 세탁기에 넣는다든지...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종종 속상해지고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래서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털어놓고,
엄마에게 고자질하듯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깨닫게 된다.
아이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안 하면서,
아이에게는 완벽한 모습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모순된 사람이었던 셈이다.
요즘 독서모임에서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지주와 정치가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묵묵히 정의와 책임을 지켜내는 지성인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지독한 욕망과 탐욕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은 그들을 비판할 수 있지만,
막상 내가 그 위치에 선다면 나 역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다.
이기적이고, 모순적이며,
탐욕스럽고, 부정한 면들.
그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능인지도.
그래서일까.
정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 깊이 감동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성찰과 인고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글을 쓰면서 그런 ‘척’들 뒤에 숨은
나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됐다.
착한 척, 괜찮은 척, 정의로운 척.
그 모든 ‘척’ 뒤에 숨은 나는,
이기적이고, 모순적이고, 부끄러운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써내려가다 보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나를 조금 이해하고,
조금은 용서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여전히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