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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얼굴이 있다

얼굴 돌린 노랑 목단

by opera

비가 그친 듯하다, 아침 운동을 하며 보니, 어제 마당 한 귀퉁이에 고였던 물은 다 빠지고 벌써 뽀송 거리는 듯하다. 동네엔 아직 안개가 끼여있다. 오늘 오전에는 그친다 했으니, 그치리라. 나는 비교적 일기예보를 믿는 편이다. 어차피 복불복인데 뭐...

산에도 운무가 걸쳐있고, 저 멀리 보이는 다리는 구름에 덮여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할 시간이다.

비 온 뒤라(아직도 살짝은 뿌리고 있다) 풀이 더 무성한 것 같다. 마가렛은 키가 웃자라 온 마당을 다 덮은 듯하고, 사이사이로 난 풀들은 날 만난 듯 삐죽거리고 온 마당을 뒤덮고 있는 듯하다. 비 오면 제일 신나라 하는 녀석들 같다. 좀 있다 뽑힐 제 운명도 모른 채 마냥 싱싱함을 뽐내고 있다.



수 주전에 황목단을 사서 심었다. 올해는 목단 값이 좀 오른 것 같았다. 마당에서 자란 목단이 생산한 씨앗을 심어 어린 목단이 많이 났음에도, 욕심이 과한 사람이라 화원에 가서 "황금 목단"이라는 말에 혹해 샀다. 값도 우리 목단보다 비싼 5만 원을 주고, 꽃대가 있는 녀셕을 골랐다. 지인은 아주 붉은 목단을 샀다. 얘들은 중국말로 쓴 명패를 당당히 붙이고 있는 중국에서 수입한 꽃 같았다. 하기사 목단은 중국에서도 사랑받는 꽃이니 꽃은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돌아와서 큰 목단 앞으로 자리를 잡고, 심었다. 혹시라도 수그린 꽃 봉오리가 대일까 봐 살짝 돌려서 잘 심었다(내 생각에는...). 이웃이 와서 보더니 "아니 얘를 왜 거꾸로 심었어?"라고 하시는데, 보니 꽃봉오리가 돌아 앉았다. 앞으로 하면 "거치적거릴까 봐..." "그래도 거꾸로 모습인데?" "뭐 어때, 잘 자라면 되지 뭐" 파서 다시 심을까 하다 그냥 두었다. 몇 주동안 녀셕은 큼직하게 봉우리를 키우면서 잘 자랐다. 얼마나 컸는지 볼라치면 꽃잎을 제쳐 봐야 하니, "그냥 파서 다시 심을까..." 몇 번 생각도 하다가, 먼저번 주황 목단의 쓰라린 경험을 생각하면서 꽃나무에 무리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께 비 오는 날 오후 슬쩍 노란빛이 보였다. "와! 노랑 목단이 피었다~" 그런데 녀석은 고개를 숙인 데다, 얼굴이 뒤로 향해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 매일 한 번은 확인한 것 같은데 놓치고 만 것이다. 꽃 봉우리가 제대로 벌어진 것도 못 봤는데 피었다. 꽃이 핀 것을 보니 이제야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남의 얼굴을 돌려놓았네..." 이렇게도 무지할까. 마당 가꾸기를 몇 년은 한 것 같은데 한 가지만 생각하고, 아직도 전체의 조화를 볼 줄 모르다니. 꽃도 얼굴이 있다. 나무도 얼굴이 있다. 돈을 줘서라도 아름다움을 위해 성형하는 세상인데, 생겨있는 아름다운 얼굴조차 제대로 못 보이게 하니 얼마나 미안한가 말이다.


우리 황목단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은 아니었다. 팔 때는 "황금 목단"이라 해 샀는데, 황금색이라기보단 노란 색, 어쩌면 나의 정서에는 맞는 은은한 노란색인듯하다. 문제는 얘 얼굴은 제대로 찍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돌려 찍어봐도 본모습이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주인 잘못 만난 제 복이고, 들어온 식구 제대로 못 보살핀 내 부덕의 소치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틀어 "성형시킬까" 하다가 애당초 그런 생각은 말라는 외침이 들린다. "그러다 꽃나무 죽인다". 그래, 너는 겸손하게 너의 아름다운 뒤태를 보여주며 자라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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