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흐리다 또 비가 온다고 한다. 어제는 화창하게 맑았는데.. 우리나라 기후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뀐 듯하다. 마당을 보면 차라리 스콜처럼 한번 쫙 내려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장미가 아주 예쁜 색으로 활짝 폈다. "사계장미"라고 해서 산 것인데, 큼직한 모습이 예쁘다. 누구한테 장미 선물을 진심으로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오늘 장미는 나를 향해 "당신께 나를 바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흐린 날은 이상하게 비 오는 날보다 우울하다. 기분도 찌뿌둥하다. 작은 일에 살짝 즐거움을 가질 수 있으니 행복하다. 이래서 조금씩 숨 쉬며 살고 있지 않겠는가. 어두운 생각은 어차피 사라질 수는 없다. 햇빛이 강하게 비치면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밝고 맑은 생각이 더 크면 된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 인생은 아니, 역사에겐 언제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어 왔다. 언젠가 말했지만 승자이기에 역사를 쓸 수 있었고, 가려진 역사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법이다. 비가 며칠 내리더니 상추나 치커리 같은 야채들은 하룻밤 새 성큼 자라고 장미도 마가렛도 활짝 피었지만, 함박꽃 작약은 그야말로 몰골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저걸 그냥 둬야 하나.. 뽑아 버려야 하나.. 고민이다.
초목들에게 물은 필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아이들과 덜 좋아하는 아이들로 나뉘는데, 나무와 달리 꽃들은 비가 계속 오면 뭉개질 수밖에 없다. 마당에 비가 똑같이 뿌려지지만, 한쪽은 싱싱하고 한쪽은 떨어진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함박꽃은 커다란 얼굴처럼 사람들 사랑을 듬뿍 받던 좋은 시절이 잠시라도 있었다. 화려할수록 추락하는 모습도 추하고 빠른 법이다. 그러나 마가렛 같은 들꽃은 비가 오나 해가 내려 쬐여도, 바람에도 그냥 흔들려 주면 된다. 소박하니 사라질 때도 소박한 법이다. 마당 구석의 할미꽃은 내내 고개 숙여 꽃 피우더니, 어느새 씨앗 품은 마른 꽃술을 흩뿌리고 있다. 어제는 윗집 아주머니께 한 줌 뽑아 주었다. 한 계절을 살고 난 녀석인데도, 실처럼 가벼웠다. 그래도 주변엔 할미꽃 투성이다. 조용히 바람에 날려 매년 실낱 같은 씨앗들이 어디론가 스며든 것이다.
화려한 함박꽃은 일주일 동안 화려함을 자랑하곤 꽃대를 잘릴 운명에 처해졌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싱싱한 야채는 가족의 먹거리가 되고, 소박한 꽃들은 마당을 점령한다.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면이 앞인지 뒤인지 모른다. 앞인지 뒤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하나의 동전을 두고 양면을 가졌다고 한다. 마당의 꽃들도 그렇고, 우리 삶도 그러하다. 그러니 자랑할 것도 없고, 아파할 것도 없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면 된다.
내가 나온 그 자리에 누군가가 올라갔다. 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고 나도 내 길을 찾아간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원래 보낸 것과 떠나버린 것에 대한 미련은 더 크게 남는 법이다.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다.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은 진리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우울할 때면 좋았던 시절 생각이 더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꾸물꾸물한 날은 기분도 더 꾸물거린다. 기분의 등락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다 말겠지 뭐 오늘 하루니까.. 음악을 듣던지, 산책을 더 하던지, 식구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는 것도 괜찮은 "하루 때우기"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좋아하는 스칼렛 오하라의 "타라(Tara)"처럼 꿋꿋이 버티고 사는 것이다. 나의 작은 "타라"에서 순간을 소중하게 키워가며 새로운 뭔가를 해가면 된다. "하루 때우기"가 쌓여 한 달이 아름답고, 연년이 좋고 시간이 행복해질 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려라 장미여! 아름다운 이 순간을...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미도, 사랑받고 아름다웠던 함박꽃도 하나다.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네 모두 그러하다.
길고 넓게 생각하면 잃을 건 없어요. ( tv 방송에서 본 어느 제주댁 말씀)
으스러진 함박꽃
비에 허물어진 제라늄들
장미가 활짝 피었다. 은은한 색이 더 화려하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