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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과 "멍" 때리는 훈련

쉬어가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by opera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일리 커피는 연하고 부드러운 편이다. 위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커피를 진하게 마시지는 않는다. 엊그제 한잔 마셨을 땐 너무 부드럽고 맛있는 느낌이 들어 "아 이래서 원두커피 하나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아침 비도 오니, 분위기 있게 커피 한잔 내려 마당에서 즐기리라. 커피 한잔을 뽑아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가제보 아래로 간다.


그런데 방금 새 통을 뜯어 추출했는데 쓴 맛만 많이 나고 어제 같은 크리미 한 맛이 나질 않는 것 같다.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가? 한 회사에서 나온 자식도 어떤 통에 담기느냐 에 따라 틀려진 것인가? 아마 그때마다 만들어진 조금의 차이가 전체 풍미를 바꿔주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맛을 느낀 내 입맛이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 새통에 든 브라질 커피는 지난번보다 부드럽고 크리미 한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비가 아니라, 들이치지 않으니 작은 가제보는 비 구경하기 안성맞춤이다. 아침에 비 오는 마당을 받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차분하니 참 좋다. 이렇게 한참을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시간도 많은 내 머릿속엔 할 일이 또 떠 오른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잠시라도 조용히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 멍 때리고 잠시라도 비 구경하려 하려 눈을 감는다.


어제 삶은 닭 생각이 났다. 낮에 종방에서 잠깐 본 동물농장에 나왔던 아저씨는 유기견 다섯 마리를 자기 먹는 것보다 더 잘 먹이시던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닭가슴살 사둔 것에 인삼 한뿌리 넣고 끓여서, 우리는 야채와 샐러드를 해서 먹고 애들은 닭 삶은 국물에 사료 조금 넣고 닭고기를 찢어 주니 너무 잘 먹었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주고 저녁까지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한 번씩 아이들한테도 영양식을 해줘야 되겠다. 그동안 애들이 나이 먹도록 인스턴트로만 키운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참! 이 보슬비엔 거실에 있는 로즈메리 분을 비를 맞혀야겠다. 내놓아야겠다. 잠시를 "멍"하니 있지를 못한다.


고즈넉한 이 분위기에 내 머릿속은 어제 닭 삶은 일과 로즈메리 비 맞게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도무지 적막함 속의 공허한 깨끗함 같은 자연과는 교감이 안 되는 건지... 이미 머릿속 가슴속까지 "바쁨, 뭐라도 해야 됨"이, 모세혈관을 타고 온 몸에 영양분이라도 공급해주는 체계로 굳혀진 것 마냥, 잠시라도 편히 앉아 비 구경도 못하게 자동인형처럼 왔다 갔다 하게 만든다. 화면에 "AI, 바쁨, 빈자리 없음, 오리지널 현대인임" 네임텍을 걸고 있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듯 하다. 그렇담 "쉬는 훈련"을 해야 한다. 쉴 때 쉴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을 때, 그냥 온전히 쉴 수 있는 연습을 해서 쉬는 것도 일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쉬도록 해야 한다.


오 분 만이라도 그냥 가만히 "비"만 바라보고 있기, "멍 때리기"가 힘든 이유는 "나"로 채워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뭘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비가 들이치지 않고 고요히 내려앉아주니 얼마나 좋은가...


들어오니 cbs FM에서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빗방울처럼 아름답게 튕겨 울린다. 나는 이 음악이 생각날 정도로 스페인 기행기를 마음에 와닿게 쓰진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오늘처럼 흐리고 비 오는 촉촉한 날씨 하루가, 음악을 살려준다. 자연의 힘에 못 미치는 것이 인간이다. 역시 또 비우지 못한 나의 상념들. 생각도 쉬고 마음도 쉬고 몸도 쉬어가는 "멍때리는 법"을 배워야 할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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