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래도 우의를 입고 삼십 분 정도 걷는다. 마당을 보니 잡초가 너무 많아 전정도 하고, 풀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앵두나무 곁가지를 자르는데, 뭔가 툭하고 떨어진다. 나뭇잎에 있던 송충이다. 아니 송충인지, 무슨 벌레 인지 제법 큰 벌레다. 기겁을 하고 일어나 혹시 떨어지며 닿았으려나 모자를 털고 법석을 떤다. 에프킬라를 가지고 와서 뿌린다.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다. 마당이 울창해지는 건 좋은데, 꽃과 나무가 여러 종류로 늘어(올해 많이도 사지 않았던가...) 자라는 것도 좋은데 많아지는 벌레를 보니, 얘네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이 걱정된다. 올해는 유독 벌레가 많다 하니, 약을 쳐야 하나...
물론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다. 농사도 제대로 못 짓고, 그렇다고 정원도 살뜰하게 가꾸지 못한다. 보이는 것 위주로만 가꾸고, 사다 심기 바빴다. 그런데 5월이 되니 눈에 띄게 원하지 않는 얘들이 많이 나온다. 온갖 종류의 풀들이다. 잔디밭에도 보이는 대로 뽑긴 했는데, 돌아서면 풀이다. 이러다 얼마 있지 않아, 저 푸른 초원 위에 풀밭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온 식구가 주말에 달라붙어 작전이라도 펴야 하는 것일까.
화단 속에 풀, 나무 사이 풀, 사방 풀 속에도 관건은 채마밭의 풀이다. 우리 집 조그만 채마 밭은 골마다 작은 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벌서 몇 번 정도 골을 뒤집곤 했는데, 오늘 보니 또 파릇파릇 올라오고 뽑은 자리에서도 나고 있다. 작정을 하고 다시 뽑아 본다. 비가 오면 땅이 촉촉해서 잘 빠질 줄 알았더니, 작은 것은 작아서 안 빠지고 큰 것은 뿌리가 있어 잘 안 빠진다. 할 수 없이 호미로 또 골을 갈아엎었다. 호미로 갈아엎어 털어 버리고, 흙을 다시 봉긋하게 야채 심은데로 올려 주었다. 결국 조그만 채마밭도 완전히 정리 못하고 멈춘다. 삼분의 일이나 했을까? 어차피 내일 되면 또 풀밭 될 텐데 뭐.
지난번 바람에 다행스럽게도 고추나 토마토가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뿌리를 잘 내려주었다. 이웃들은 특히 고추가 냉해를 입어 몇 번을 다시 심었다고 했는데, 우리 채마밭의 고추는 싱싱하게 뿌리를 내렸고, 꽃도 피더니 조그만 고추가 달렸다. 매운 고추 두 개와 아삭이고추, 피망도 섞어 심었고 가지와 오이도 심었다. 오이도 조그맣게 달려있고, 꽃을 피우고 있다. 가지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건강야채다. 달리기 시작하면 주렁주렁 달리니, 올해는 구워서라도 많이 먹을 작정을 하고 심었다.
토마토를 좋아해서 방울토마토 , 흑토마토, 찰토마토, 짭짤이 토마토 뭐가 잘 자랄지 몰라, 종류도 다양하게 심었다. 아직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았지만 벌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곁가지를 잘라주어야 한다고 자르는 법도 배웠지만, 제대로 몰라 이것저것 잘라 주었는데도 토마토는 알이 맺혔다. 고맙고 신기하다. 건강하게 잘 키우려면 지금부터 잘 가꿔야 하는데... 이웃에게 물어볼 참이다.
풀들이 있건 말건 얘들은 자기네 몫은 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완숙되기 위해 자라기 시작한다. 나머지는 내 몫이다. 얼마나 잘 가꿔 주느냐에 따라, 맺힌 열매가 튼실해지던지 제대로 못 크고 말던지 할 것이다. 풀도 뽑아줘야 하고, 지줏대도 든든하게 세우고, 잘 묶어주어 힘들지 않게 해줘야 하며, 물도 잘 조절해서 줘야 한다. 마트에서 사 먹을 때는 야채들이 이런 공으로 시장에 나온 것인 줄 몰랐다. 하기야 세상 무엇이 거저 생겨난 것이 있으랴 땀과 눈물이 없이 형성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머릿속의 아무것을 제외하고는...
요즘처럼 비가 하루 이틀 걸러 오락가락하면 풀은 더 신나 한다. 매일 뽑아내야 할 정도로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 장마가 시작되면 골 사이로 다니기도 힘들 것이고 촘촘히 심은 덕에 풀 뽑기도 힘들 것 같아 염려가 된다. 동네 이웃 중에서도 비닐 사용한 집이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야채가 답답하지 않을까 보기도 안 좋고"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키워 보니, 풀에 덮여 답답한 거나 비닐에 덮여 답답한 거나 답답한 건 마찬가지고 오히려 양분을 빼앗아 먹지 않는 비닐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성질 급한 나는 평가부터 하고 본다. 나쁘다.
내년 봄에는 아예 처음부터 갈아엎어 비닐을 씌운 후에 심을까 하다가, "아니다 좀 더 부지런해지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자"로 돌린다. 채마밭이 엉망이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구획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아무거나 심었기 때문이다. 아스파라거스 심은 자리는 나무 옆이라, 풀하고 나무와 아스파라거스가 붙어있다. 작은 채마밭이라고 해도 제대로 구획하고 자리를 구분했어야 했다. 무조건 땅이라면 심고 보자 했으니 이런 결과를 산출한 것이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잡초 제대로 안 뽑고, 관리를 못해서 그렇다. 두 가지 다 게으른 내 탓이다. 야채 하나 키워 먹기도 이렇게 많은 공이 들어가는 줄, 키워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다. 농사가 만사의 근본(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이란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이, 제대로 사는 일과 더불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직접 해보고, 땅에서 키운 야채들은 시장에서 사 온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선 맛 차이가 다르다. 지금 뜯어먹고 있는 상추, 치커리, 쌈배추, 로메인도 더 아삭거리고 쌉쌀하면서 진한 맛이 강하다. 강아지들도 상추와 특히 로메인을 너무 잘 먹는다. 아사삭 거리면서. 물 함량이 98% 이상되는 야채라도 맛과 조직감의 차이가 있다. 비가 그쳐도 풀이 일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잡초는 야채 자라는 속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잡초는 현대인이다. 어떤 고초가 와도 굴하지 않고 자란다. 뽑아내도 금방 또 나온다. 거름 없이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하지만 나도 현대인이다. 굴하지 않는 현대인이다. 누가 이기냐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열심히 뽑고 관리하면 "채마밭의 야채들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결의를 다져본다.
뽑고 난 후의 모습 같지 않은, 일단 정리한 채마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