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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보내기

by opera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라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말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라는 말도 하지 말자.

그냥 매일 보는 풍경이라도 "어제와 다름"을 알고, "내일은 다시없을 것임"만 알면 된다. 그러니 "나의 오늘 하루는 나의 모든 날이다".


비가 오려나 날씨는 우울하지만, 청량한 기분도 든다. 오늘 하루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꾸려간다는 것이 때론 참으로 힘들고 고달프며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는 스스로를 넘어서는 방법만 터득하면 된다.


돌아보니, 꽃 피우지 못한 채 잘려버린 주황 목단에서 새잎이 나온다. 그의 어제는 "오늘의 잎"이 되었다.

잘려나가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피우지 못한 아픔도 삼킨 탓이다.


노랑 목단의 떨구어진 얼굴을 받쳐주었다. 목대가 뻣뻣해 받쳐 주려고 올리는 것이 오히려 목대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면서,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도 모르면서, 내 눈과 마음의 만족을 위해서, 목받침을 해준다. 오늘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오늘이 그런 것이다. 숨 쉬고 있다 외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알아서 운행되는 것처럼 작은 모든 일들과, 좀 더 큰 일들과 정말 큰 일들이 쌓여 있어도 자연스레 지나갈 "날 숨"같은 것들이다.


으아리 꽃이 지나 했더니 새로운 녀석이 얼굴을 방긋 내밀고 있다. 떨어지려는 녀석도, 새로 핀 녀석도 같은 줄기에 덩굴진 아이들이다. 찰나에 꽃은 피고 돌아서면 꽃잎은 떨어져 있다. 기한을 정하고 구획을 하고, 세는 것은 인간에 불과하다. 너무 큰 의미를 두지도 말고, 느끼고 호흡하고 받아들이면 하루가 된다.


작년 여름에 샀던 연꽃분이다. 꽃도 안 피고, 큰 수반에 옮기지도 못하고 그냥 두다, 겨울에 버리기도 뭐해서 보일러실에 넣어 두었다. 두 번인가 물을 준 것 같다. 봄에 화분을 털려고 보니 바닥 흙이 너무 딱딱해 그냥 물을 부어 주었다. 그런데 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연잎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고, 그냥 물만 부어주었는데 추운 겨울에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흙속에 뿌리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물주다 꽃잎을 들춰보니, 꽃몽우리가 맺혀있었다.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게. 하지만 연꽃의 꽃몽우리는 이미 작년 보일러실에서 볼품없이 죽은 것처럼 말라 있을 때 생겼던 것이다. 연꽃의 어제는 "생겨나는 오늘"이 되었다. 오늘 있는 일이다.



잎이 새로 나오고 있는 주황 목단

목대를 받쳐준 노랑 목단

지고 있는 으아리 꽃 위에 새로 핀 으아리 꽃

연꽃잎이 자라고 있는 연꽃 분과 물속에 맺혀있는 연꽃 몽우리




p.s. 상단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찍은 드가의 작품(장애물 경주에서 낙마한 기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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