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다던 날씨가 멀리 먼 산 쪽에서 해가 살짝 비치는 걸 보니 맑을 모양이다. 바람 불지 않고 햇살이 따뜻해지면 좋겠다. 5월 이 지나면 모기가 생긴다. 모기가 생기면 마당에 나와서 아름다운 정취를 즐길 때 고통이 따른다. 벌써 모기가 나왔다는 집도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인간생활에 맞춰 모기도 빨라지는 게 사실이다. 어디서 왔을까 그 추운 겨울엔 어떻게 견디고 봄은 또 어떻게 알고 나오나.
중요한 건 빨리 나오면 빨리 들어가야 되는데, 꽃들이 떠나는 것에 비해 모기는 이제부터 시작해 예전보다 더 늦게까지 9월 찬바람 불 때까지 기승을 부린다. 물론 모기 삶의 변화가, 인간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인간이 만든 여러 환경변화에 의한 요인이기도 하니까.
원하는 대로만 된다면 삶이 얼마나 순탄할까. 그래도, 누군가의 말대로 재미없는 삶을 살지 말라고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셨다는 것처럼, 곧게 펼쳐진 인생길만 간다면 사는 재미도 없을 수 있겠다. 순탄하지 못한 길을 가도록 만들어진 인간이라, 혼자 힘들어 "받쳐주는 옆"이 있어, 둘이 되야 서게 만들어진 것이 인(人)간인가 보다.
싫어하는 모기지만 여름이 있는 이상, 함께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덜 물리고 적절하게 방어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뿐이다. 뭐 모기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은 찾기 싫고 무찌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미덕이나 모기와 공존할 순 없으니, 이건 이겨야 한다. 인생살이에도 더러 모기처럼 끓어내야 할 것들도 있을 땐 과감하게 끓어내야 하는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 시대, 단절의 시대에 전원생활의 장단점을 얘기한 인터넷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전원생활의 장점은 전원을 즐길 수 있고, 텃밭도 가꿀 수 있고,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자연 속에 살 수 있는 행복함 등 개인 차가 있겠지만 몇가지를 말했다. 단점은 난방비가 많이 들고, 벌레가 많다는 얘기인데 단순한 얘기 같지만 맞는 말이다. 난방비는 각자의 방법대로 절약해 가며 살지만 벌레는 혼자 퇴치하기가 힘들다. 벌레는 순환하기 때문이다.
모기는 도시에도 있는 전통적인 여름 벌레지만, 덧붙여 전원 속에서는 해마다 독특한 벌레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간혹 마당에서 말벌도 심심찮게 보이기도 한다. 양봉하시는 분들은 말벌 때문에 피해가 크다고 한다. 작년에는 중국에서 왔다는 매미나방이 여름에 기승을 부렸다. 우리 동네엔 많지 않았지만, 혹 지붕끝에 노랗게 붙어 있는 나방 집이 하나라도 보이면 미사일 수준의 물대포를 쏴서 없앴다.
올해는 유독 송충이 종류가 많은 것 같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놈, 나뭇잎에 앞 뒤로 숨어 있는 놈 나무젓가락으로 여러 마리 아작 냈다. 서너 달은 모기와 벌레와 싸워야 할 것 같다. 마당엔 늘 검은 개미들이 있다. 부지런히 일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돌만 들추면 개미 알집이다. 개미는 원래 온 마당에 많다만 정리하려고 돌이라도 들추면 하얀 알집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요즘은 알 까는 때인 것 같다. 마당 깊숙이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정원을 가꾸는 나야, 어떻게든 피해 가며 마당을 즐기곤 하는데, 나무들과 꽃들의 고통은 크다. 작년엔 작약이 진딧물 때문에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 다행히 올해는 많은 꽃을 피우고 일주일도 안되어져 버렸다. 장미 진딧물도 많은 것 같고, 고추에도 진딧물이 있어 약을 줘야 한단다. 이제부터 벌레들에게 뜯기는 식물들의 고충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조그마한 압축 분무기를 신청했다. 우리 마당엔 "한 번도 약 같은 것을 뿌려본 적이 없어" 라고 자부심을 가졌지만 나무젓가락으로 해결될 수준은 아닌 듯해, 어쩔 수 없이 "자연 그대로 주의자"인 나도 진딧물 약이라도 조금씩 뿌리려고 구입했다.
지난 4월에 얘기 단풍잎이 나왔을 때, 잎 뒤로 까맣게 뭐가 앉아서 에프킬라를 뿌린 게 전부였는데 사실은 이것이 살충제였던 것이다. 나역시 이미 뿌려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환경의 변화가 심해지니, 생명있는 것들의 가파른 변화도 따르는 것 같다.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할지는 우리와 미래의 몫이겠지만, 지구가 더 아파서는 안된다는 큰 생각도 가져본다. 아름다움을 지속시키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고가 따라줘야 한다. 모든 것을 거저 가질 수는 없다. 벌레와의 전투가 시작되는 유월을 앞두고 매운 결심을 해보며 아침마당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