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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이야기

삶 이야기 하나..

by opera


연꽃 몽우리가 드디어 머리를 내밀었다.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꽃몽우리가 잎을 제치고 고개를 내민 것이다. 몇 주 인지도 모르게 물속에 잠겨 잎 아래에 숨어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제 곧 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연꽃 피우는 것은 처음 본다. 아직 피지는 않았으니 별 탈이야 없겠지만 조심 스러이 기다려 피는 것을 봐야 한다.


옆집 지인은 분홍색인 것 같다고 한다. 그분은 초봄에 꽃몽우리가 올라온 연꽃을 사서 꽃을 봤다고 한다. 사흘 지나니 시들었다고... 우리 집 연꽃은 작년 초겨울에 보일러실에 그냥 넣어둔 아이다. 집안에 들여놓을 용기는 없고, 추운 겨울에 밖에 두면 얼어 죽겠고 결국 나의 정원 철학(?)대로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리라"는 마음으로 보일러실에 넣어 두었던 아이. 물은 두어 번인가 준 것 같은데 거의 말라서 올 초봄에 화분 털려고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아 물을 줬는데, 이렇게 잎을 피우고 꽃몽우리까지 내주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한 아이다.


생명의 강인함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마음대로 오지도 못하지만 마음대로 가지도 못한다. 연꽃은 이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곧 꽃을 피우지 않을까.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마당에서 운동하다 고개를 더 내민 꽃몽우리를 찍었다. 30분 정도 운동하고 돌아서니 세상에, 꽃몽우리가 벌어져 있었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면 꽃이 피어나는 신비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불교에서의 연꽃의 의미는 수렁과 같은 지저분한 곳, 세상에서도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자 한 것아닐까. 연꽃과 물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집에서 수반이나 미니분수라도 만들어 물을 가까이 두게 되면, 그것도 흐르지 않는 물을 둔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비위생적이란 것을 곧 알게 된다. 우선 모기가 알을 깔 수도 있고, 물에 사는 벌레도 많이 생긴다. 물이끼나 물때가 앉아 지저분해진다. 부지런히 갈아주고 돌봐야 한다.


커다란 연못의 연꽃 서식지야 어떨까 싶다. 물속도 사람 사는 땅 위 세상처럼 온갖 합당한 생명체들이 군락을 이뤄 사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연꽃은 아름답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것이니, 마음이 깨끗한 연꽃은 환경이 아무리 열악할 지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막 피어나는 작은 연꽃을 바라보며 몇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는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연꽃은 뿌리가 엉겨 이어져 있다. 뽑아내기 힘들다. 인간관계를 의미할 수 있겠다. 원하는 관계만 두고 원치 않는 관계는 상처 없이 잘라지면 좋겠는데, 이게 그렇지가 않다. 원치 않는 관계일수록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연꽃은 금방 꽃을 피우지 않는다. 겨우내 보일러실에서 이 한송이를 잉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봄도 늦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니, 하나의 결실을 보기 위해 얼마만한 인내가 필요한 것일까.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그나마도 결국 피지도 못하고 한 해를 보내는 경우도 있을 테니, 쉽게 원하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일이 아니다. 겨우내 봄꽃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전심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작은 결과가 잉태되어 꽃을 피울 날이 올 것이다.


깨끗한 물이 아니라도 좋다. 물이 말라져도 개의치 않다. 내가 보기에 물이끼가 많은 것 같아 늘 새물을 부어주지만, 물을 붓는 순간 이끼와 섞혀지며 혼탁해진다. 시간이 지나야 이끼는 이끼대로, 물은 맑고 투명하게 정체된다. 원치 않는 환경의 변화라도 너무 요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필연적인 변화가 닥칠 때도 있다. 받아들이면 어느새 내 것으로 순화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힘들게 피운 꽃도 며칠 가지 못한다. 고뇌와 인내 속에 결국은 꽃을 피우지만, 그렇게 힘들게 탄생한 꽃도 활짝 핀 아름다움을 며칠 느끼지 못한다.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연꽃은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다. 살다 보니, 꽃도 피운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같다.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멋진 출발을 할 수도 있지만, 살아갈수록 부딪히는 원치 않는 과정에서 괴로워한다. 오직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과정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고지에 올라갔을 때의 "허무"도 견디기 힘들어진다. 연꽃은 과정이다. 연꽃으로 살아가다 보니 피워낸 꽃에 불과한 것이다.


연꽃뿌리처럼 단단하고 얽힌 관계 속에서, 충족하지도 못한 물과 아름답지 못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내는 과정을 겪고 살지만, 운이 좋다면 잠시라도 아름다운 꽃을 볼 수도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낙망할 필요도 없다. 꽃도 꽃잎도 살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이 순간에 햇볕 속에 자신을 맘껏 내놓으며, 본연의 꽃을 내미는 작은 연꽃처럼 순간의 감사를 즐길줄 안다면 자라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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