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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24. 2022

말랑거려야 한다. 힘을 뺄 수 있는 힘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일까.

수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드러움과 딱딱함의 차이다.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우리는 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두뇌가 굳어져 사고 확장의 한계가 오고, 아이들처럼 말랑거리지 않아 따라 하기 힘든 육신으로 변모해 갈 때 늙어감을 깨닫게 된다.

딱딱해져 가는 것은 껍데기의 몸만이 아니다. 속 안의 몸 뼈도 늙어 갈수록 더 딱딱해진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정도의 신축성이 있어야 탄성이 좋아지는 것인데, 그 신축성이 빠져버리므로 우리 몸의 뼈나 근육이 한번 앞뒤로 물러나면 되돌아오기 쉽지 않은 것이다. 딱딱해져서 상하게 되면 원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부러져 버리는 것이다.


학위를 받은 후 좋아하는 음악을 시작했다. 고생한 스스로를 위한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것만도 행복했지만,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늘 꿈꾸었던 일이었다. 두 해 정도 열심히 레슨을 받아 플루트를 어느 정도 불게 되었다. 원래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었으나, 시도하지는 못했던 차에 오래전 친구가 배워보라고 준 플루트가 있어 대신 시작하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시도했다. 용기는 내기는 힘들어도 막상 내보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보상을 안겨주는 법이다.


악기를 배우는 것,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연습과 고침의 연속이다. 그런데 악기의 스킬보다

레슨 받으며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힘 빼요!"였다.

손가락 힘도 빼야 하고, 입술의 힘도 빼야 한다. 어깨 힘도 빼야 한다. 나는 힘을 뺀 것 같은데, 선생님은 "톡톡" 두드린다. "힘 빼세요!!"

그저 평안히... 그냥 잠자려 할 때 힘 빼는 것처럼 아주 유연하게 몸뚱이를 놓아 주라는 것이었다.

힘 줄 곳은 오직 호흡하여 공기를 저장하는 배, 아랫배만 힘을 주고 그 힘을 공기를 위로 조금씩 때로는 확 끌어올려, 입술은 오로지 그 힘 있는 공기를 배출하는, 내 보내는 역할만 해주라는 것이었다.


이 힘이 어떤 힘이던가.

모질고 힘든 세상에서 오늘날까지 나를 지탱시키며 당당하게 버티고 존재하게 한 힘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힘을 빼란다.

이 힘은 바로 나 자신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힘을 빼란다.


버리지 않으면, 유연해지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뭐든지 잘 배울 수 있는 것은 힘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부드럽기에 무엇이든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부드러우니 밀고 들어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능력과 경험으로 채워졌고 알았던 지식과 스킬이 스스로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꽉 채워진 근육에 껍질마저 딱딱하니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기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두 해 동안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신기한 것은 그 두꺼운 껍질도 조금씩 벗겨지는 것이다. 입술에 힘이 빠지고.. 어깨 힘도 조금씩 빠지고, 내면의 힘을 밀어 내기만 할 때에 플루트는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내보내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가 서있는 그 자리까지 지탱시켜온 힘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선 면역력이 약하면 이겨내기 힘든 법이다. 나는 고맙게도 굳어진 육신도 노력하면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악기를 배우면서 간접 경험했다. 딱딱해져 가는 뼈를 부드럽게 하기 어려울진 몰라도, 뼈를 지탱시키는 근육과 마음 정신은 얼마든지 부드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랑거리는 뇌를 위해 끓임 없는 사고와 배움의 실행이 습관처럼 계속된다면, 부지런한 손과 발처럼 행복한 하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육신은 탄력적인 부드러움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이렇게 참고 견디면서 버텼기에 여기까지 왔어요"는 앞으로의 발걸음을 위해선 이제 퇴장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굳어진 육신이 말랑 거러 져야만, 보이지 않는 인생 산행을 이어갈 수 있디.


힘을 뺀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자신의 주장을 누그러트리는 일은 힘든 일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경직되어가는 몸과 마음을, 봄눈 녹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연습해야 한다.

바람 불면 바람에 꽃잎처럼 하늘 거리기라도 할 듯 새처럼 날아가기라도 할 듯,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야 만 할 때도 기름 바른 김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힘을 빼야만, 보이지 않는 힘이 속에서 솟아 나오게 되니 인생 면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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