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Mar 09. 2022

같은 길가면서도,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을 인정하는 힘

같은 곳을 다르게 보는 사람도 인정하는, 시작의 힘.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바로 옆 사람도 내가 보는 그것과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이라도 꿈은 다르게 꿀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먹고 살아가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이라도 사고와 바람은 다를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이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인권은 공평한 것이고 누구도 누구보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다는 것을 시대의 변화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같은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간다고 여겼던 가족이나 친구들 조직에서도, 목적을 풀어가고 해석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나와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하는 바로 옆의 누군가의 "다름을 보았을 때"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던 그이가, 어느 날 나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해도 그의"다름"을 아쉬워하기보단, "그는 그렇게 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조직은 동일한 목적(조직의 성장과 이익의 달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모인 곳이다. 방향은 같을지 모르지만, 직원들이 보는 곳과 리더가 보는 곳이 다를 수 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설명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만, 리더가 원하는 스타일로 똑같이 바라봐질 순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 속에, 어딘가 닮은 듯해도 똑같은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힘도 모두 다른 것이다.


일목요연하고 획일적으로 움직여지는 조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임에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움직여지길 바란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어 맛 들여졌다. 기성세대인 나만해도 "공감"과 "동감"에 유난하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따로 또 같이"를 즐겨야 한다.


손 안에서 결코 놓지 못하는 휴대전화, 핸드폰의 목적은 전화였다. 하지만 요즈음 핸드폰을 통화용이라고만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오히려 "개인비서", "모바일 정보서비스 제공 도구"라는 역할 표현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휴대전화의 첫 번째 역할 목적은 "전화통화"다. 다만 갈수록 기능이 발달해 본 목적을 상쇄할 만큼의 역할을 휴대전화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목적이지만 다양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백합은 백합이고,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일 뿐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고호의 해바라기도 될 수 있고, 해바라기 기름을 가득 주는 해바라기 씨앗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고호의 해바라기만 귀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기름으로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해바라기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아니다. 틀렸다. 고호의 해바라기나 해바라기 기름을 내주는 해바라기나 다 각각의 해바라기 일 뿐이다.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 그는 나와 다를 뿐이다. 훌륭한 리더는 다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다름의 스타일"도 인정해 주는 리더는 더 훌륭하다. 다른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양각색의 다름은 창조를 위한 다양한 거름이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보는 능력을 존중해야 한다. 인생의 여러 고비들은 어떤 얼굴과 태도로 접근해 올지 모른다.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 다양한 모습과 함께 하긴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해야만 한다. 인생 면역력은 늘 새로운 얼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 익숙해져 이겨 내고 맞이 할 수 있는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랑거려야 한다. 힘을 뺄 수 있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