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들이고 마당 서재가 생겼습니다.

by opera

올여름과 가을에는 마당에서 많이 지내지 못한 것 같다. 여름엔 너무 더워 집 밖에 나오기도 힘들었고, 브런치를 하면서 시간 되는 대로 글을 쓰느라 집안을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다. 책 읽고 넷플릭스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는, 이른 봄 앞마당 구석에 만든 가제보 아래 데크에서 이웃 지인들과 함께 차도 자주 마시고, 코로나의 답답함을 자연 속에서 위로받기도 했었다. 가제보는 강한 햇살과 심하게 들이치지 않는 웬만한 비도 막아줘 브런치 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올해는 작년만큼 가제보 아래에서의 쉼을 누리지 못한 듯하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다른 이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게 되고 집안에 박혀있다 보니 나름 은둔의 삶(?)에 적응되고 무엇보다 컴퓨터와 가까이 지내게 된 이유도 한 몫한 건 아닐까...


아침에 이웃 지인이 고구마 구운 것을 가지고 왔다. 대문여는 소리가 나자마자 강아지들이 반색하며 깡총거린다. "왈왈왈" "빨리 마당으로 나가요" 요구사항이 크다. 막 아침일을 정리하고 브런치를 오픈해 이웃 작가들의 글을 보며 내 서랍의 글도 검토하던 중이라 약간 아쉬워 "쉴 시간에 오셨으면 좋으련만..." 하는 이쁘지 않은 마음이 들려는 순간, "고구마까지 구워오셨다는데 ~~"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준비한다. 트레이에 끓는 물을 담은 보온병과 종이컵, 차를 준비해서 내놓은 후, 보리와 승리 옷 입히고 발에 진드기 방지제를 살짝 뿌린 후 내어놓는다. 강아지들은 좋아라 마당으로 뛰어나가 한 바퀴 돌고 데크 쪽으로 온다.


가제보 아래 작은 데크에는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 몇 개, 2인용 철제 장미 의자가 놓여있다. 2인용은 보리 승리와 같이 앉기 위한 전용의자다. 늘 같은 장소에 있던 테이블에서 이웃들 얘기를 들으며 차를 마시다가 문득 위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안쪽에 있던 긴 의자를 꺼내 담장 옆으로 옮기고 다른 곳에 있던 작은 테이블을 앞에 놓았다. 마당 정원 맞은편 쪽이라 현관 쪽이 보이긴 해도 생각보다 나름 안정감이 있다. 여럿이 앉을 공간은 옆에 따로 있으니, 함께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앉아보니, 편안하고 바라보는 정경도 나쁘지 않다. 집 앞에도 작은 화단이 있어 작은 산딸나무와 라벤더, 세이지가 널브러져 정리되지 않은 자연미가 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이 년 동안이나 이 공간을 똑같은 배치로 두느라 이리 좋은 구도를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마치 거실 한쪽에 작은 책상이 생긴 듯하다. 마당에선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아 노트북 생각 쓸 생각은 하질 못했는데 테이블이 생기니 공간도 충분하다. 핸드폰으로 브런치를 보다가 문득 "그래 노트북도 한번 써볼까" 노트북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보기는 딱이다. 이제 와이파이만 잘 잡혀 브런치가 열리면 좋겠다 싶었는데,

"유레카!"

"오! 브런치가 열린다." 인터넷 연결이 약하게 뜨긴 해도 와이파이가 잡힌다. 지금 이 글을 쓸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고마울 데가..." 남들이 들었으면 웃을진 모르지만, 핸드폰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으니 노트북도 당연히 안될 것이다라고 무의식적으로 굳혀져 있었던 고정관념이 타파되는 순간이다.

상식적으로 뻔한 일이라 해도, 스스로 확인하고 저질러 보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 "변화와 창조"란 말은 심오한 과업이나 프로젝트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변화와 창조"는 무조건 새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것이나 널려져 있는 보편적인 것들에도 흙속의 진주처럼 박혀있다. 찾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충하여 채울 생각만 했지, 주어진 것을 좀 더 찬찬히 보고 찾아내고 보완하여 업그레이드할 생각은 못한 것이다.


이웃들은 상관없이 대화를 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마음이 심란해..."

"집주인 있잖아"

"아직 완전한 가을도 아닌데... 단풍 물도 안 들었는데 뭘 그래"

나는

"와이파이가 잡히니 노트북을 쓸 수 있어 너무 좋아요 ~"

거실에서 글을 쓸 때는 tv나 "헤이 카카오"를 틀어놓고 쓰는 경우도 많다. 소통하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핑계를 삼아 말이다. 아직은 푸르른 잔디밭에 마지막 만찬을 위해 앵앵거리며 꽃을 찾아다니는 꿀벌, 제비가 떠난 후 자유롭게 재잘거리는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약간은 선선한 바람이 체온을 적당히 올려줘, 손가락은 리듬을 타며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말이다. 이명 소리도 자연의 여러 소리에 섞여 제소리만을 고집하진 않으니 무엇보다 고맙다.


아침에 살짝 시간을 빼앗긴다 생각되던 이웃 덕분에 이런 변화의 발상도 하게 되었으니, 뭐든 불평 말고 감사하고 즐겁게 맞이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뻔한 진리가 맞는 말이다. 노트북 화면은 흐린 날임에도 남향집이라 집안에서 보던 때와는 달리 약간 어둡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엔 더 어둡게 보여 화면 보기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건 우리 집이 프로방스의 하늘 아래라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여건이 최선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으로 쉬어갈 수밖에 없는 이 시기가 가슴 답답하기도 하다. 바꿀 수 없다면 즐기란 말을 새기면서 주어진 상황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는데, 돌려보니 있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틈새가 보이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건 내가 최선으로 여기고 즐긴다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적으론 좀 여유 있는 지금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당장 바꿀 수는 없다. 브런치를 쓰기 시작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지난한 과정 중에 마음 여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늘지 않는 구독자수에, 스스로의 역량 부족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사소한 이런 변화는 큰 기쁨과 용기를 준다. 무엇보다 강아지들도 좋아하는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글을 쓰고 아이들은 여기저기 냄새 맡고 관찰하며 다닌다. 강아지들에게 배우는 한 가지는 매일 보고, 사는 환경에도 매 순간 처음 본 듯이 반기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점이다. 매일 산책해도 산책할 때마다 처음 하는 것처럼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요즘의 나도 늘 접하는 환경을 가끔씩이라도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롭게 보는 의식 변화에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이 새로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오늘 아침 더 새로워진 환경의 마당 공간은 나를 또 즐겁게 만든다.

나는 그려본다. 비가 살짝 뿌리면 내리는 비를 보면서 빗소리 속에서 글을 쓸 것이다. 화창한 날엔 따사로운 햇살 아래 글을 쓰고, 물안개가 낀 아침엔 차를 한잔 내려 마시면서 올라오는 공감을 기록해 둘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자연 속에서 교감할 수밖에 없는 창조의 신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세상 어느 곳 보다 풍요롭고 너그럽게 나를 받아주는 마당 서재를 사랑해 갈 것 같다.

보리는 독서와는 상관없이 오수를 즐긴다.

아침에 찍어 본 마당 서재

마당 서재에서 바라본 가을 허브의 물결



p.s.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흐린 주말입니다. 내려쬐는 뜨거운 햇살과 라벤더의 향이 가득한 프로방스의 정취로 대신합니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 (라 트라비아타 La latraviata) 중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를 바리톤 레나토 부루손 (Renato Bruson)의 노래로 올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XK8Fs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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