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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Nov 02. 2021

단풍잎의 색깔은 최소 13가지도 넘습니다.

붉은색만 단풍이 아닙니다.

 


며칠 만에 보리와 함께 생태 길로 산책을 나선다. 길가의 단풍나무들은 일주일 만에 몰라볼 정도로 옷을 갈아입었다. 바닥으로 뒹구는 낙엽들 속에 하늘로 펼쳐진 단풍나무의 가지에는 셀 수도 없는 현란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색의 악기가 연주하는 자연 교향악단은 바람소리 새소리와 물소리에 나의 걸음소리를 넣어 익어가는 가을 교향곡을 연주한다.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생명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이 길에 펼쳐져 있는 단풍나무 잎의 색깔은 몇 가지나 될까?

정말 빨갛고 예쁘게 물든 단풍도 있지만 아직까지 푸르른 단풍도 많다. 이 아이들이 청단풍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홍단풍이지만, 아직 물이 덜 들었을 수도 있고 물들어 가는 중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제대로 색도 못 내보고 말라서 떨어질 수도 있다.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연두색, 약간 밤색, 갈색, 조금 덜 빨간색... 색을 단색으로 표현할 순 있지만, 그 색으로 가는 과정 중의 색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먼셀 표색계로 자주에서 녹색까지 13가지다. 각색마다 채도에 따라 몇 가지씩 나눠지는 것을 감안해서 명명할 수 있는 색 만으로도  족히 수십 가지 넘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의미로는 이 자연의 색은 셀 수도 없다.   


가을 하면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색, 특히 아주 새빨갛게 물든 단풍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나 역시 우리 마당의 작은 단풍나무 색은 왜 앞집 공작단풍나무처럼 진한 빨간색이 안 날까 아쉬워했다.

그렇긴 해도 가을이라 해서 모든 단풍잎이 온통 빨갛게만 물들어 있다면 어떨까.

이 나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새빨간 잎으로 하늘로 땅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땠을까... 온 세상의 붉은빛이 봄의 벚꽃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을진 모르지만, 붉은 잎만 달려있다면 핏빛의 단풍들만 널려져 있다면 한편으론 섬뜩하진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모르긴 해도 다른 색들이 섞여 있기에 붉은색이 더 돋보일 수 있었을진 않았을까. 굵고 오래된 단풍나무를 보면 아직 초록 잎도 있고 노란 잎도 있고 누런 잎도 있고 주홍 잎도 있다. 거기에 말라 버린 단풍잎도 많다. 빨갛지 않은 단풍잎들이 많기에 빨간 단풍잎이 더 아름답고 붉어 보이는 것이다. 모든 색이 섞여 있기 때문에 대비가 되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이다. 빨갛게 물들지 못한 단풍잎이 새삼스레 고마웠다.


나무도 같은 말을 한다. 나무가 나무다운 것은, 나무가 많은 산이 아름다운 것은 모두가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굵고 잘 생긴 나무가 일직선으로 하늘만을 향해 가는 삼나무 숲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산이나 좁다란 숲길의 나무가 더 아름다운 것은 크고 작은, 굵고 가는 여러 아이들이 다양하게 살며 하늘을 보든, 땅으로 팔을 뻗치든 간에 자유롭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단풍나무가 하늘로만 치솟아 뻗어 있다면 지금처럼 아름답다고 느껴질까. 땅을 보고 늘어진 가지, 어울리지 않는 각자의 방향대로 뻗어 있는 가지들이 엉키고 섞여 있기에, 다르기에 더 잘 어울리고 어울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때로 부족하고 넉넉지 못하다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지 않다고 아쉬워할 것도 아니다. 억지 같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있기에 더 많이 가진,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돋보였던 것 아닌가. 어쩌면 그들이 내세우며 살 수 있는 이유도 나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니겠는가. 되는 것도 못 되는 것도 결국은 같은 것이란 것을 이 숲길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삶의 퍼즐판에서 매 순간 다양한 모양의 퍼즐을 끼우며 살고 있다. 더 가진 사람도 덜 가진 사람도 각자 삶의 퍼즐을 끼워 맞추며 살아간다. 어떤 모양의 퍼즐을 끼워 맞출지 모를 때도 많다. 어떤 모양인지 정해진 바도 없다. 각각의 퍼즐 모양은 모르지만, 순간순간 달라지는 역할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낙엽이 될 때도 있고 꽃이 될 때도 있다. 늘 낙엽이 되는 것도 아니고 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너무 서글퍼 말자. 내게 주어진 삶의 퍼즐판에 끼워 맞춰야 할 순간의 퍼즐은 내가 택할 수 있는 "지금"뿐이다. 고개 들어 물든 단풍잎만 보고도 행복에 겨운, 만끽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 가는 길 / 걸어온 길






아름다운 가을 단풍과 어울리는 가곡 임원식 님의 "아무도 모르라고" 바리톤 고성현 님의 목소리로 올려 봅니다. 가을 정취를 느끼면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wGgioyrD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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