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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Nov 01. 2021

11월의 가을 상추, 아직도 쌩쌩합니다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 해야 한다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벌써 배추를 뽑아 김장하는 이웃들도 있다. 앞집 모과나무는 노랗게 익어 무거운 몸뚱이를 내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 가을은 수확하는 계절이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모든 것을 거두고 저장해 추운 겨울을 준비할 양식을 비축하는 계절, 인생의 가을도 다가올 차가운 겨울의 어두움을 피해 포근한 결실을 모으는 계절임에도 어쩌면 힘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마당 한구석에 여름 인양 푸르디푸른 야채가 잘 자라고 있다. 겨울을 준비해주는 배추가 아니다. 가을에 심어서 가을을 먹게 해주는 상추다.


가을에도 상추가 자랄 수 있다고 해, 배추 모종 살 때 상추를 몇 포기 사다 심었다. 신기하게 잘 자라 몇 번 따서 먹었다. 이삼 주 전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얼어 죽나 했는데, 마당 테크가 살짝 얼기도 했던 그 추위에도 죽지 않고 버티어 잘 자라준 고마운 상추다. 며칠 강한 추위에도 잘 버티고 있더니 요새는 날이 제법 풀려서 제 뜻대로 잘 자라고 있다. 여름만큼 활기차진 않아도 뜯어먹어도 다시 야무지게 올라오고 있다.


흙을 마주하고 살면 뜻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낙망하는 것도 어리석은 임을 배울 때가 많다. 세상만사 뜻대로 안 풀리는 것처럼 마당의 자연도 의도한 바대로 가꿔지지 않을 때가 많다. 작년 가을에 심은 허브, 세이지가 얼어 죽어 올해는 자그만 것 몇 개를 군데군데 심었었다. 늦가을까지 작은 모양의 흐늘거리는 하얗고 빨간 조그만 꽃들과 향기가, 자유로워 보이고 좋아서였다. 작은 것으로 심었는데 얼마나 무성히 잘 자라는지 여름부터 퍼지기 시작해서 지금 추운 날씨에도 온 마당을 점령하고 개구쟁이 아이처럼 팔을 휘둘러, 다른 아이들의 얼굴과 몸은 물론 마당을 제 놀이터 삼고 있다.


프로방스의 라벤더는 아니더라도 바람에 흩날리는 향기와 자유로움으로, 여행도 못 가는 이 시기에  라벤더가 만발했던 어느 지방의 추억을 기억케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세이지는  이기적이었다. 결국 세이지를 잘라내기로 한다. 남은 뿌리가 살 수 있다면 내년 봄에 다시 나올 것이고, 얼어 죽어도 할 수없다. 그래도 저 아이는 한 여름에 내리쬐는 햇볕을 온통 자기 것인 양, 원 없이 쬐고 살았으니 후회도 없을 것이다. 자연도 주면 거둬 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 해도  사람살이에서 받는 것보다는, 돌려주는 것이 훨씬 많은 게 자연이다.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잎 만이 마당이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이게 하는, 정체된 가을에도 마당의 흙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임 없이 움직이고 있다. 자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듣지 못할 뿐이다. "아마도 내일은 달라지겠지"하며 앉아 기다리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절대로 1도, 0.1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지 않는가...


그대로의 삶이 계속될 뿐이다. 흙의 선물과 달리 이것은 신기하게도 나이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 달라지지 않으면 내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혹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취하도록 움직여야 한다. 여름의 상추가 추운 가을에도 제 몫을 해내는 것처럼, 자그마했던 세이지가 온 마당을 휩쓸고 저를 분명히 각인시킨 것처럼,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알았던 것을 먼저 행동으로 옮긴, 움직인 사람들이 역사를 개척한 이들이었고 주변에서 말하는 어떤 모양으로든, 어떠한 것으로든 성취한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늘 경험을 하고 깨닫지만 움직이지 않고 시간 속에 갇혀 산다. 시간친구 삼아 흘려보내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게 또 인생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의 나도 오후에는 세이지를 정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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