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마당, 끝까지 버틴 꽃들과 얼어 죽은 사마귀

삶과 죽음도 하나인 자연 속의 초겨울 흙마당,

by opera



바싹 말라버린 잡초들 사이로도 파릇파릇 이파리를 피우는 것들이 있다. 가만히 보니 매발톱이다.

돌 틈에는 봄을 뒤덮었던 들꽃, 마가렛이 계절도 잊고 불쑥 올라와 꽃을 피우고 이제 얼어가고 있다. 마당 한구석의 민들레는 노란 꽃을 피웠다. 반항아들이다. 계절을 잊은 건지, 계절을 너무 앞선 건지 모르겠다만 현실을 잊었기에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다. 사람이든 꽃이든 현실을 뛰어넘는 것들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잎이 많은 골동골나물도 연분홍 깨알 같은 꽃을 피웠다. 로즈메리허브류라 겨울 땅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보랏빛 꽃을 아직 흩날리던 라벤더와 로즈메리를 미니 온실로 덮어 준다. 살아주면 고맙겠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로즈메리를 몇 분이나 샀지만, 잘 생겨서 화분에 있던 아이들은 다 죽었고, 땅에 심었던 못난이 로즈메리 이 아이만 이렇게 잘 자랐다. 분 관리 제대로 못한 잘못도 있지만, 사람의 노력도 땅의 힘에는 미치지 못함을 배웠다.


너는 살았구나" 고마운 심정이다.


이 늦가을에 아직도 꽃을 피우고 새 가시 가지를 내는 것은 장미다. 장미도 가지를 쳐줬어야 하는데, 우리 집 울타리 장미들을 제대로 잘라주지 않아 담장을 타고 높게 오른다. 새로 난 가지 위에 박힌 가시가 붉고 튼튼하다. 아직도 못다 피었는지, 초 겨울에도 장미는 당당하게 버티며 피운 꽃을 달고 있다.


장미를 화려한 청춘으로만 생각할 수 있으나, 의외로 오랫동안 피고 지는 꾸준한 아낙이다. 해를 바꿔 가며 장미를 보니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각각 색색의 꽃을 피우니 조합해 새로운 종자를 만드는 재미도 크겠고, 무엇보다 꽃이 피고 지고 계속 이어가니 기특하다.

몇만 원짜리 사계 장미나, 스탠딩 장미 못지않게 작은 장미도 분에서 땅으로 옮겨놓으면 그 작은 몸으로도 겨울을 버티고, 한 가지가 병들어 잘라내도 다른 가지로 살아간다. 진딧물이 많은 것이 흠이고 가시가 무서워 잘라낼 때는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 게 문제이긴 해도 장미는 좋다.




한 해를 오롯이 마당에서 보내다 보니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낙엽과 더불어 겨울을 맞고 겨울을 견디며 성장함을 본다. 한해살이 풀들조차 해를 마감하는 것들이 결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 생명의 힘을 북돋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싹들이 자라날 것이고 자람에 따라 계절을 풍요롭게 하다가 다시 낙엽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기회는 고난 속에서 온다고 했던가. 겨울을 거치지 않으면 나무도 화초도 제대로 크지 못함을 본다.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했던가. 성서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창조물이니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바로 증명하는 것 아닌가. 열매를 맺는 나무나 꽃을 피우는 화초나 밟혀서 뽑기조차 귀찮은 잡초라도 흙의 생명을 주는 것은 모두가 하나다.


그렇게 된다. 마당에서 살면서 정말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공감하게 되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 역시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결국은 자연 속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지 인간으로서의 특권만을 주장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내 힘으로는 곧 얼어 사라질 민들레 꽃 한 송이도 더 유지시킬 수 없다. 빌려온 세상에서 겸손하게 보살피다가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할 뿐이다. 마당 있는 집에 살지 않았을 땐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봄부터 기록한 마당은 이제 새로운 계절을 시작해 가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위해 마당도 준비시켜야 한다. 바크와 비료들을 나무 주변에 뿌려주고 여린 나무들에도 추위를 막을 보온을 해줘야 한다. 나무에 따라 볏짚으로 잠복소를 해주기도 하고 비닐 뾱뾱이로 싸준 후 숨구멍도 만들어 줘야겠다.


하얀 눈 속에 땅은 또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당은, 흙은 공평하다. 오래가는 녀석도 있고 빨리 가는 아이도 있지만, 빨리 가는 아이는 일찍 피고 오래가는 아이는 더 늦게 올라온다. 여전히 공평하다. 흙은 공정한 것을 가르쳐주고, 서두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결국엔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나간 세 계절은 다가올 겨울과 다름없이 풍성한 열매를 안겨다 주었다.

꽁꽁 얼어버린 육신으로도 세상에 왔던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알리고자 배롱나무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사마귀, 죽음까지도 저항한 반항아에게 경외심에 가까운 위로를 보내며 마당의 겨울을 준비한다.

"너도 자연으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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