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초면 결심하게 되는 많은 계획들, 올해는 그런 계획을 많이 세우지 않는다. 계획을 세운들 실천하지 못하면 의미 없고, 해도 작심 3일이다.
매 삼일마다 작심하면 결국 계획을 실현하는 꼴이니 실천 못해도 아쉬워 말고 그저 반복하라는 격려도 사실 별 의미는 없다.
그래도 다들 나름대로 작은 소망들을 세워보며 한 해를 기대하는 새해 벽두다.
마당 있는 집애서 오롯이 일 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초연함을 얻은 것일까, 달관한 것일까라는 건방진 생각까진 아니더라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흐름을 받아들임"은 알고 있었지만, 보고 배운 자연 속 현장실습의 결과였다고 할까.
산다는 것의 큰 명제 앞에서라도 생활 속의 작은 답은 그저 "하루의 이어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혹한의 추위와 시련 속에서도 신통하리만큼 2월 말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는 초목들과 마당 여러 모습들,
한마디로 경이롭다는 표현밖엔 달리 쓸 수 있는 말이 없다. 채 오월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우려 봉오리를 맺는 마당의 목단과 마가렛과 여러 꽃나무들, 마당에서 살지 않았다면 생명의 순환과 이어짐의 신비를 이렇게 알 수 있었을까. 작은 깨달음만으로도 흙을 밟고 산 시간은 충분한 보상을 해 준 것 같다.
브런치에 올린 글 중 마당에 관한 첫 글은 2021년 3월 18일에 올린 글이다. 3월 17일에 의아리와 목단과 불두화, 그리고 주홍 꽃봉오리가 아름다워 샀던 금각을 심었다. 생각해보니 3월이면 두 달 남짓 남았다.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은 추위도, 두 달 정도 지나면 봄의 힘에 자취를 감춰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두 달이 어느새 지났나 싶을 정도로 남은 두 달도 금방 다가올 것이다. 다만 간 것은 금방이고 올 것에만 연연하는 인간 본성 때문에 지금이 견디기 힘들 뿐이다.
겨울 마당의 몰골은 헐벗고 가난한 영혼의 난민 같은 모습이다. 이대로 세상이 멈춰버리기라고 할 것 같은 허전함만이 맴돈다. 그래도 이 적막한 마당에 봄은, 여름도 오고야 말 것이다. 봄이 있다는 그리고 가만히 다가온다는, 경험했던 사실이라도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리라.
잠시 생각해보자. 지금이 너무 힘들어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에 꽉 차 있다면... 불과 잠시 전, 아니 지금이 있기 위해 지나온 "어제"들을 생각해보라. 그때도 너무 견디기 힘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에 와있다는 것은 견딘 나 때문이던, 보이지 않았지만 돕는 누구의 덕이었든 간에 어제의 다리를 지나 오늘에 온 것이다.
고통은 어제에 불과하지만,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다리였던 것이다.
내일도 오늘의 다리를 지나면 자연스레 맞게 될 것이다.
올 한 해도 "오늘"을 잘 견딘다면 원하는 한 해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 생각에는 먼 얘기 같은 느낌이 들지 몰라도 한 해를 위한 날은 "오늘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올 한 해 나의 연초 목표를 거창하게 세우진 않았다. 오고 가는 하루와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하고 있는 일들의 좋은 결과를 위해서도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충실한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 조용한 도전을 통해 작은 목표들을 이뤄가는 마당처럼 맛있게 익어가고 싶은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