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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14. 2022

나만 그런가?

나무의 굴곡진 결이 나무의 몸이다




오후에 예약해 놓은 안과검진을 다녀왔다. 여러 해 전부터 안구건조증이 심해 병원을 다니고 있다.  정기 검진을 다니는 중, 오른쪽 눈에 백내장 증상도 보인다고 해서 약을 같이 넣고 있다. 백내장 생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저기 탈이 나는지 속상했다. 눈을 워낙 혹사시키다 보니 나이에 상관없이 현대인들의 눈 건강은 심각하다고 하는 말에 "그래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하고 위로를 받는다. 석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아직 많이 심하지는 않아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하고 나 역시 수술은 최대한 미룰 생각으로 별 걱정 없이 지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인가 아침에 눈을 감았다 뜨면 한 번씩 눈이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감았다 눈을 뜰 때 "번쩍"하고 꼭 플래시가 터진 것 같은 잠시 그런 증상이 있었다. 검진하면서 말씀을 드리니, 그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지금 검진받는 곳에는 장비가 없어 검사하기 힘드니 좀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놀라 다시 물어보니 확실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섬광증일 수도 있고, 망막 박리현상일 수도 있다고 무슨 설명을 하시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별것 아닐수도 있지만 이상이 있을 경우, 놓치면 시력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는 소리만 들린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리를 듣고 나왔다.


섬광증이라는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다. 너무도 많은 자료가 나와있다. 읽어보고 대충은 이해한다. 우선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야 한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별것일 수도 있으니 빨리 확실하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여기저기서 "나 탈"라고 신호를 보낸다. 작년 연말 종합 검진 때 위내시경 검사 결과 헬리코박터 양성이라 치료를 위해 헬리코박터 제균 약을 일주일 먹고 힘들었다. 년간 공복혈당이 조금 높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지난 검사에는 130이라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위장은 위염끼가 있어 좋지 않다는 것 알았지만, 당뇨병은 집안 내력도 없는지라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주범 아닌가 생각한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를 보고 있는 눈은, 삶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눈인데 어쩌면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탈없이 함께 가는 당연한 친구로 생각해서였던지, 눈에 큰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마음에 상처를 줬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다음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 해야 하는데, 남들은 다 멀쩡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리저리 탈이 나는 것 같은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가 한다.


그러다 "그래,  까짓것" 모든 것이 정말로 부족하고 없었던  시절이 갑자기 생각다.

그 시절을 견뎌낸 지금

원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

나를 화나게 하지만,

그 시절을 견디게 만들었던 힘,

"끈기와 오기"가 시 말한다.


"더한 것도 견뎠는데, 뭘 그래"

"병원 가보라면 가보면 되지"

"너보다 더 한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아.

그래도 다들 잘 견디고 산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혀보니 이해가 되고 힘이 생긴다. 병원 다니고, 치료하라면 치료하면 되지. 쩌면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돌이켜보니, 나는 쓸 줄만 알았지,

나의 건강을 위해 많이 베풀진 못했다.

속상하면 속상해하고, 화가 나면 화를 냈다.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몸과 정신을 혹사시켜 풀었다. 내 몸에 흐르는 기가 막힘없이 흘러가도록  발목을 잡는 자질구레한 것들(결국은 다 자질구레한 것들이다)을 그냥 흘러 가게 두지 못한 때가 많았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내 몸의 일부분은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먼저 아끼고 사랑해주는 마음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보듬어줄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수고했어" 위로와 용기를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먼저 베풀어야 했었다.

그래야 주변 제대로 돌아볼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다.

그래야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도 용서할 수 있고, 흘려 보낼 수 있다.

그래야 오롯이 원하는 행복을 누리고 나눌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화(火)에게 화(和)가 말한다.

만사 중에 우선은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가 화()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기회와 겸허함을 받아들이라는 암묵의 친절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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