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Aug 09. 2022

친구 아버지




그저께 친구 아버지께서 새벽에 화장실 가시려다 쓰러지셨는데 마침 화장실 가려던 친구가 발견하고 놀라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의식도 멀쩡하고 괜찮아 보여 병원으로 모셔가 사진을 찍어보니 정신도 괜찮으시고 뼈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물리치료받으시고 링거 주사 맞으신 후, 출근한 친구를 대신해 모시고 왔다.


어제는 장수하신(요즘 같으면 몇 살이 장수의 개념인진 모르겠다만...)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이북에서 내려오셔 늦게 본 자녀들을 끔찍이도 아끼셨던 분이었다. 대로 못 걸으시고 몇 년을 지내셨는데 친구 형제들은 효심도 깊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오 남매가 돌어가며 모셨다. 시골을 떠나시기 싫어하셔서 봄 여름 가을에는 자녀들이 돌아가며 내려와 있다가 겨울이 되어 서울로 모셔갔는데 주무시다 돌아 가신 것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아흔을 넘기시면 주무시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는데 그 되신 것이다.


코로나가 염려되긴 했지만 기차 타고 올라가 문상을 하고 내려왔다. 아흔을 훌쩍 넘겨 돌아가셔서 그런지 상갓집이지만 서글픈 분위기는 덜한듯했다. 그래도 눈시울이 부어있는 친구를 위로하며 인사를 전하고 왔다. 오늘 아침 발인이라 날씨가 추워 힘들겠지만 잘 보내드리라는 문자를 보낸다.


아침에 친구에게 전화해 아버님은 어떠신지 물어보니 아무래도 뇌졸중 초기 증상 같다고 큰 병원 가서 CT라도 찍어 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염려되어하던 일을 접고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군청과 병원에 가야 하는데 혼자 모시고 다니면서 감당하기엔 힘들 것 같았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살아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나름의 대비도 하고 있지만 때론 예측하지도 못했던 변화를 겪기도 한다. 갑자기 사고라도 생기면 알고 있었던 일이라도 사람은 당황하게 되어있다. 누구도 담담할 수 없다. 연약하게 태어난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로 받쳐주고 기댈 수 있게 해 주고, 잡고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찍 서둘렀지만 열한 시 반이 넘어 시내에 도착했다. 오전 진료는 보기 힘들고 오후 한 시 반 진료를 봐야 한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오전, 오후가 갈려 버리니 점심시간 한 시간 반이 붕 뜬다. 마침 휴게 건물에 죽집이 보인다. 두 종류의 죽을 사, 차 안에서 점심 요기를 한다. 아버지께 정성스러이 떠먹이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아이를 돌보듯 챙겨드리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이제 자식 돌보듯 연로하신 부모님을 하나하나 챙겨드려야 니, 남의 일이 아니다.


진료를 받으니 "왜 쓰러졌을 즉시 오지 않았냐"는 얘기를 한다. 뇌출혈은 아닌 듯 하지만 여러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CT만 찍으면 되려나 했건만 MRI, 경동맥 초음파 및 몇 가지 추가 검사에 오후 내내 걸릴 것 같았다. 처음 겪는 현실에 친구 혼자 왔다면 마음부터 무겁고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내가 운전하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우리 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시니 남의 일 같지도 않고 서로 도와야 할 일이다.


병원에는 온통 어르신이다. 어르신을 모시고 온 사람들도 대부분 머리가 희끗하신 분들이다. "노노(老老) 부양"은 이미 시작되었다. 100세 시대, 장수가 축복인지도 모르지만, 늘어가는 노노 부양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도 많다. 준비되지 않은 노인세대의 경제적인 짐은 노노 부양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의료기술 발달과 더불어 건강보험 보장의 확대로 세밀한 검사가 이어져, 생각지도 않은 기저질환까지 발견해 치료 등 과정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의료보험의 국가적인 재정문제까지 논하고 싶진 않지만 스페인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스페인도 의료비는 무료지만 의사 진료 대기기간이 너무 길어 중환자의 경우 기다리다 사망할 때도 많다고...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노인인구는 우리보다 높고 세게 적으로 노인인구증가는 필연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인인구증가는 단시간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더 큰 염려가 되는 부분이다. 인구의 역피라미드 현상은 이미 예견된 바이며 결국 대안은 인구증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그마저 암울하게 한다. 2021년 16.5%, 2025년 20.1%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되며 미국 통계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50년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35.9%로 40.1%인 일본 다음으로 높아진다고 한다.


눈이 내린다. 추운 날씨에 눈까지 펑펑 내리니 길이 미끄러울까 염려가 된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며 기다리다 차라도 마시려 나왔는데 갑자기 해가 뜬다. 해가 뜨니 흩날리는 눈발도 움찔한다. 그래, 궂은 날씨엔 해만 떠도 좋다.


젊었던 시절,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온갖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셨던 우리 부모님들이 이제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 형편에 처해지신 것이다. 노인인구가 급속히 늘어가는 우리의 현실과 부양해야 할 자식 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예전보다 훨씬 힘든 실정이다. 나라가 많이 부강해졌다고는 해도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눈발 속에서도 살짝 드러내는 햇살로 쌓인 눈이 잠시라도 녹아가듯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가져본다.



p.s 인순이 님과 바다 님이 열창하는 "아버지"를 올립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내 앞에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r7B_9-rj9bI









매거진의 이전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