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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n 08. 2022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As good as it gets!





마당을 둘러놓은 데크 중간에 의자를 놓았다. 지인들이 우리 집엔 마당 의자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걷다 힘들면 앉으라는 의자지만, 돌아보고 여유를 가지고 쉬어가는 휴식의 힘이 있는 삶을 살자는 나만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급한 성격이라 실수도 많다. 누구라도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보면서 한 번은 숨 쉬고 건너가 보자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데크를 걷다 붉은 장미와 주황 장미가 어제보다 더 활짝 피고, 생생한 것을 본다. 장미꽃 앞으로 중간에 둔 의자에 앉아본다. 그동안 보던 것 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데크 난간에 기대고 고개를 하늘로 향한다. 녹음은 사라지고 온통 파란 물감을 펼쳐놓은 듯 하늘 바다가 보인다.


이런! 이런!

하늘! 너만 쳐다보니 수평선없는 파란 바다였구나!  


하늘을 사랑한다면서 온전히 하늘에 빠져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하늘 바다는 나를 열렬히 부르고 있다. 구름 파도들 조차 섣불리 오지 못하도록 잡아 두었으니, 빨리 풍덩하며 자신에게로 헤엄쳐 오라는 푸르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하늘 마당에 깔려있던 미세먼지와 황사, 어지럽혔던 사소한 모든 것들이 다 씻겨 내려갔나 보다.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일상이 돼버린 요즈음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하늘은 얼마만인지. 산과 마당과 나무와 꽃 사이에서 보이는 하늘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온전히 자신만 노출시킬 수 있는 푸른 하늘을 본 것도 오랜만인 듯하다. 여행의 추억이 구름 문양으로 떠다니던 알프스의 무공해 푸른 하늘과 견주어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원래 아름답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 아침이다. 이렇게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잭 니콜슨의 명품 연기가 그대로 녹아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회화 공부한다고 여러 번 봤던 기억이 난다. 영어실력에 도움은 안됬던 것 같은데 보고 또 봐도 질리진 않았다. 불행하게 살았지만 가슴이 살아있어 결국은 행복을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 좋아하는 강아지까지 톡톡히 한몫을 했던 영화라 그랬을까.

 

강박증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별난 삶을 살아왔던 살아온 멜빈 유달(책 니컬슨)은 우연한 기회로 맡겨진 강아지 버델을 돌봐줘야 할 상황에 처한다. 강박증, 그것도 청결 강박증 환자인 멜빈에게 강아지는 너무도 싫은 존재였지만, 결국 이 작은 강아지 버델을 보살피게 되면서 얼음 았던 냉랭한 멜빈의 가슴에 온기가 돌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살아나고 버델의 주인인, 평소에 경멸해왔던 게이 사이먼(그레그 키니어)과도 우정을 가꾸며, 그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캐럴(헬렌 헌트)에게 로맨스를 느끼게 된다. 멜빈은 로맨스 소설 작가답게 "당신에게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말로 캐럴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된다. 물리적인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 없었지만 멜빈의 마음이 열리면서 그가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이제 그에게 펼쳐진 세상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삶을 주는 곳이 된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마음을 열어라"는 것이다. 마음을 열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생각이 열리고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이 보고 살지만, 전혀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며 쉬는 마음 역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정도로 평온함과 행복을 느낀다.


옥(玉) 티가 있듯 아무리 잘 난 것이라도 들춰내면 티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완벽한 파란 하늘의 "티"는, 가로지르는 전선줄이다. 눈에 거슬린다. 전선줄은 오래전 개발의 상징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힘들었던 시절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환경을 위해 도시에서는 전선 지중화사업도 한창이다. 지중화를 했더라면 더 아름다운 곳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주 느낀다. 걸쳐져 있는 전선줄은 하늘이 보여주는 광활함을 가로지른다. 티를 파내면 옥은 깨어지게 된다. 적당히 티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또 다른 자연의 이웃, 하늘을 제집 삼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전선줄은 쉼을 주는 의자 인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 살고자 하면 내 욕심만 채울 것이 아니라는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하늘바다의 평안함에 빠진 내게 "너는 하늘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이야"를 되새겨주기라도 하듯 이름 없는 한 마리 새가 전선줄에 앉아 지저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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