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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01. 2022

고양이는 업둥이가 되기 힘든가요? 1편

뻔뻔한 고양이가 나를 반기며 달려들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늘 오던 흰털에 검은 무늬( 검은 털에 흰 무늬?)의 냥이 녀석 발길이 뜸해졌다. 다른 집에서 먹을 것을 찾았는지? 혹 어떤 일을 당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염려하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잊었다. 녀석 주려고 산 캔은 언제 나타날도 모를 냥이들을 위해 비축해 두었고...


점심시간에 돌아와 보니 회색 얼룩이가 "야옹야옹" 목청도 크게 울어대며 다가온다. 지난번 새침데기 검은 아이는 얼마나 눈치를 보는지 밥도  밤에만 먹고 가고 얼굴 마주쳐도 만져줄라치면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얘는 정반대다. 집안에서 강아지들 "왈왈" 거리는 소리가 문밖에서도 들리는데 아랑곳없이 야옹거리면서 밥 내놓으라고 달려든다. 씩씩하다. 영락없는 수컷 같아 보였는데 역시 당당한 수컷이었다. 자세히 보니 콧등에 막 아문듯한 상처도 있고 등에 털이 빠진 곳도 있다.


동네 냥이들 사이에서 한바탕 싸움이 있었는지 아니, 뺏고 빼앗기... 먹고살아야 하는 거리 묘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어가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었는지 연민이 느껴진다.

"이 녀석이 동네에서 패권을 잡았나?" 

생각할 새도 없이 더 크게

 "야옹야옹" 외친다.


"알았다 알았어~" 마침 캔이 있어, 밥그릇에 반 정도 담는다. 금세라도 밥그릇을 빼앗을 기세다. 밥을 담고 물그릇에 물을 채워 놓는다 " 야옹 으르르르" 그르렁 소리까지 내며 아예 마리를 그릇에 박고 먹는다.

강아지들 난리에 들어왔다. 얘들은 아마도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를 본 듯하다. 바짓가랑이 냄새를 맡고 난리다.


잠시 후 다 먹었나 싶어, 현관문을 열어보니 마당 쪽에서 " 야옹 그르르르" 난리도 아니다. 밥이 모자랐는지, 배를 내밀고 뒹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남은 캔을 가져와 조금 더 담아 준다. 역시 머리를 박고 먹는다. 식사 삼매경에 빠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목덜미를 만져준다.

먹으면서도 "야옹 그르르르" 좋다는 건지, 더 달라는 건지 고맙다는 건지, 알아서 해석하라는 듯 뭐라 하며 정신없이 먹는다.


고양이가, 길냥이가 이렇게 부대끼는 것은 처음이다. 저랑 나랑 언제 만났다고... 마치 집 떠났다 돌아온 탕아처럼 나를 보고 반가워 "발라당" 드러누워 배까지 내밀고 있으니, 가뜩이나 동물에게 마음 약한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저"하기 나름이다.

좋다고 속을 보이고 다가오는데 "나, 너 몰라" 할 수 없는 게 인지 상정 아닌가...


더 달라고 달라붙는 녀석에게 " 그만 됐어. 나중에 더 줄게..." 하고 집안으로 들러갔다. 점심 후 나와보니 반갑게 뛰어온다. " 야옹 그르르르~" 하면서...


이렇게 가까이서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 비윗살 좋은 녀석을 몇 장 찍고 목덜미를 만져 준다. 점심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마트에서 2+1 하는 냥이 캔을 보고 또 샀다.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러다 동네 온갖 길냥이들이 한 번씩 들러가는 "마실 장소"가 돼버리는 것은 아닐지 은근 걱정도 된다.

그래도 스스로 다가와 필요를 호소하며 엉기는 생명을 외면할 수가 없다.

잘하는 일인지 잘 못하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흐드러진 모란꽃 밭 옆에서 라일락 향기에 취하며 비록 걸식일지라도(아니다. 나 역시 사랑으로 베푸는 식사니 걸식이 아니다) 왕처럼 즐기며 먹고 쉬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는 내 마음도 잠시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본다.


퇴근 후에도 "야옹 그르르르" 하고 달려 나온다면 이 녀석은 마당의 새 식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심, "고양이 업둥이가 들어왔나" 하며 녀석이 오후까지 있을까 싶은 은근한 기대감까지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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