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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12. 2023

세 마리 강아지와 가로등과 섬잣나무 친구들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2권 14화


 강아지들과 아파트안팎으로 산책을 한다. 동생이 키우고 있는 까만 푸들 밤이, 그리고 샐리와 보리, 승리는 가끔씩 가방에 넣어 데리고 나오기도 하지만 바깥에서도 많이 짖어 집에 두고 나올 때가 많다. 주로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길로 산책한다. 시골집에선 뒷산언덕을 내려와 강변데크길로 산책하던 아이들이지만, 여기선 흙길이 아닌 돌길을 걷는다. 애견인들이 많아 여기저기 강아지들의 흔적이 있다.


강아지들도 산책을 즐긴다는 표현은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흔적("향기"라고 하기보단 솔직히 "냄새"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서...)을 찾아 "킁킁"거리며 그 위에다 자신들의 흔적 남기기를 즐기는 듯하다. 물론 스트레스해소에 도움 되긴 하겠지만.

본능일까?

생명 있는 존재들이 항상 뭔가를 남기려고 하는 것은...

세 아이들은 흔적을 찾으며 또한 자신들의 흔적도 남기기 위해 단지 안을 열심히 걷는다(물론 트랙은 돌지 않는다. 입구에 반려견은 출입시키지 말아 달라는 표시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샐리는 유독 번잡스럽다. 푸들이 방정맞기도 하고 고집도 세다지만, 샐리는 전형적인 푸들이다. 산책 중에도 반드시 상가를 거쳐가야 한다.  여기  때부터 상가를 거쳐 때론 5층 동물병원까지 들러 산책하던 습성이 남아있어서 인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걷기 코스에 아예 상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산책 시에도 상가를 살짝 거쳐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가에 들어가면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우리는 샐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잽싸게 안고 옆문으로 나가 바깥에 내려놓는다. 그저 상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도 녀석은 만족한다. 금방 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보면 강아지는 강아지다.


쉽고 단순해지는 것...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버팅기다가도 그 순간을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총총 거리며 걷는 모습이 그리 귀여울 수가 없다. 샐리는 나이 든 티가 물씬 나지만 행동은 아직 청춘이다. 푸들특성 그대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하고 버팅기지만, 살짝 안아 들어 옮기면 그뿐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고집으로 뻣뻣해지는 목과 딱딱해지는 가슴으로 외로워가는 인간속성에 비하면 얼마나 경쾌 한지 모르겠다.


나는 오랫동안 강아지들을 키우면서 그들이 주는 사랑과 따뜻한 감성을 배우는 것에 감사했지만 나이 들어가는 강아지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에 더 고맙기도 하다. 강아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평생 다정한 친구를 곁에 두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위안도 얻는다. 때론 지나칠정도로 귀찮게 치대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이 나를 애정하고 있다는 표현이 아닌가.


아이들은 어느 정도 나댄 후면 천천히 걷는다.

나도 주변을 돌아보며 나무도 숲도 사이사이에 올라오는 이름 모를 꽃들도 볼 여유를 가지며 걷는다.

오늘따라 유독 나무 목대도 예쁘고 진한 초록의 가시잎도 청초해 보이는 나무가 많은 것을 본다. 


강아지들이 킁킁거리는 한쪽, 키가 큰 가로등옆에 바싹 붙어 있는 한그루를 자세히 보니 자랑스러운 명패에 "섬잣나무"라고 이름이 적혀있다. 섬에 많이 사는 잣나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단지엔 '섬잣나무'가 많다. 가로등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 서로 정겨운 벗 같아 보인다.

이 아이는 어느 섬에서 왔을까?

아침이면 해풍으로 얼굴 씻고 저녁이면 지는 햇살 따뜻한 이불아래 파도소리 자장가로 포근한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본관만 "섬"이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라던 많이 곳에서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선택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고향이 있을지,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고 만 것인진 모르지만 낯선 곳에서의 삶을 가로등과 부대껴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파트에도 가로등은 외로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바다 사나운 항해길을 밝혀주는 한줄기 등대처럼, 태생이 홀로 있어야 빛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포근한 섬잣나무에 기대어 서있는 가로등은 전혜린의 청춘을 밝혔던 뮌헨의 가스등처럼 외롭지 않게 아파트의 저녁거리를 비춰주고 있다.


항상 붙어 다니며 돈독한 우애로 우주세계까지 따뜻하고 정감 있는 온기를 주었던 아르투(R2 d2)와 쓰리피오(C-3PO)처럼, 삭막한 아파트군락에서도 가로등과 섬잣나무는 온화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제나이와 상관없이 천방지축 본능의 향기를 쫓아 자유로이 산책하고 있는 강아지 트리오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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