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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02. 2022

고양이는 업둥이가 되기 힘든 가요? 2편


 퇴근하고 왔는, "세상에..." 녀석이 데크 위에서 내려와 반갑게 "야옹 그르르르" 한다.

"아니, 너 안 가고 나 기다렸니? " 착각 섞인 즐거움으로 냥이와 대화를 한다. 집안에선 강아지들이 요란하게 짖고 난리다. "왕왕, 왈왈" "아니 왜 빨리 안 들어오세요?" 개딸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


강아지들 운동시키려 마당에 데리고 나오면 고양이와 부딪힐 텐데, 이 녀석 덩치도 만만찮고...

나는 고양이에게 " 밥 먹었으니 어디 놀러 갔다 올래?" 하며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어느 작가님이 말씀하신 "사람이 냥이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냥이가 사람을 택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잠시 후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왔다. 마당에 풀어놓는데, 냥이는 제 집인 양 아직도 데크에 있었다. "아니 아직 안 나갔니?" 말할 새도 없이 보리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달려간다. 보리를 안고 냥이에게 돌담으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한다. 이 녀석은 배짱도 좋아 "그르르 릉"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달려오려는 기세다.

"나가서~ 놀아"

"강아지들이 마당에 있으니, 너는 왔던 데로 갔다 나중에 와~~"

돌담 위로 올라가 앞발 얌전히 모으고 앉아서도 계속 "야옹 그르르르" 한다.

녀석이 있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면 좋으련만 보리와 승리는 그쪽을 바라보며 목청껏 짖어댄다.

"왕왕, 왈왈, 깡깡"

"넌 누구야 여긴 우리 집이야..."
누군가를 경계하는 것은 인간의 죄 된 본성에 한 한 것이면 좋겠지만, 사람하고 산지가 몇해던가...우리 집 강아지들은 "견원지간" 성어가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제가 사람인 줄 아는 강아지들이다. 사람하고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사람의 욕심도 닮아가는 강아지들이다.

할 수 없이 고양이녀석을 향해 비수를 던진다.

" 아~~ 가라니까 밥 많이 먹었잖아 나가서 놀다가 나중에 다시와~"

고양이 녀석은 "야옹 그르르르" 하더니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아지들은 한참을 짓다가 마당에서 산책을 하고 제 영역을 표시하며 돌아다닌다.


늦은 밤에 나와 "냐옹" "냐옹" 하고 인간 고양이는 낮에 왔던 녀석을 부른다.

하지만, 길냥이 녀석은 마치 

"내가 사람인 줄 알았니"라고 대꾸라도 하듯

바람만 불고 어디서도 냥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녀석이 눈에 밟혀 밤새 몇 번이고 나와서 "냐옹"거리며 불러 보다, 캔을 따서 밥그릇에 담아둔다. 밤에라도 들르기를 바라면서...


아침 일찍 나와 냥이 밥그릇 둔 데를 봤다. 그대로다.

"아!" 역시 고양이는 한번 삐지면 다시 안 온다는 말이 맞나 보다."

"어제 상황이 그랬는데, 그렇다고 삐지냐?"

나는 고양이가 된 건지, 고양이를 사람으로 생각한 건지, 혼자 야속한 생각에 냥이를 원망해 본다.

씩씩하고 예쁜 녀석이었는데...


낮에도 밥은 그 자리에 있다. 할 수없이 일회용 비닐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혹 저녁에라도 올까 싶어...

제 발로 찾아온 냥이를 모질게 내쫓은 것만 같은 미안함이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전에, 정에 약한 동물이다. 제게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무엇이라도 외면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기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사기를 왜 당하지?"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마음이 여리고 인간에게 외면하기 힘들어 사기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음을 본다.

물론 내가 길냥이에게 사기 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집에 왔었던 그 길냥이는 오히려 나에게 사기당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 봤지만, 맛있는 것도 주고 예뻐해 주더니 내쫓고 말았잖아"라고 어디선가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나의 소통 부재 때문에 생긴 작은 비극이다.


저녁에 녀석은 오지 않고, 데크 아래, 전에 왔던 까만 녀석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오랫만이네~ 잘지냈어? 밥 주리?" 밥을 계속 줬어도 내게 손 내미지 않는 녀석이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밥에 남은 것까지 섞어 갖다 준다. 오랜만에 온 녀석은 배가 고픈지 고개를 박고 잘 먹는다.

"그래"

"너희 묘족(猫族)은 바람 같은 존재인가 보다"


그걸 인정해 줘야 했다. 묘족은 먹는 것보다 그 무엇보다 "자유"를 즐긴다. 간섭받는 것도 싫고 남의 입장 고려하는 것도 싫고 본성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영혼이다. 자유를 얻기 위한 고통도 감내하기 때문이다.

올 때와 갈 때를 잘 구분하고 틀에 박힌 일정한 삶을 살길 원하는 것은 인간인 내 소망이었을 뿐이다.


비록 한번 만났던 씩씩한 길냥이였지만, 녀석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굳이 내 방식대로 거둬주려고 했던 것도 욕심이었고, 만남과 헤어짐도 삶의 과정에 불과한 일에 너무 연연하는 것도 욕심이란 생각을 깨우친다.


길냥이는 업둥이가 되기 힘들다. "자아"와 "본성"이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누군가에도 무엇에도 "구속"될 수 없다. 잠시라도 나는 뻔뻔한 길냥이 덕에 냥이 업둥이도 들이나 했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다시 들를지 모를 자유로운 업둥이에게는 언제나 열려있는 휴식의 장소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잠시라도 나를 선택했었던 "묘猫"씨는 한 번씩 내게 "이런 게 자유예요"라는 선물을 주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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