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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6. 2022

보이지 않는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있는 힘

한 치 앞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얼마 전, 늘 가던 길 데크 길을 걷다 되돌아오는 길에 앞에서 꿈틀 하는 "뭔가"를 보았다. 똬리도 틀지 않은 뱀 한 마리가 데크 난간 옆에 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강아지들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팔 길이 정도 되고 아주 굵진 않은 갈색 무늬 옷을 입은 뱀이었다. 옷 색깔이 화려하진 않았으니 독 있는 뱀은 아니겠지 여기며 황급히 돌아왔다. 강을 곁에 두고 벚나무와 강 쪽으론 단풍나무, 특히 청단풍나무가 많아 봄 여름 내내 푸르고 가을이면 온갖 색으로 아름다움을 나눠주는 애정 하는 산책길이다. 그래도 뱀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살무사는 아니리라 생각하고 지인에게 물어보니 화려하지 않아도 독 있는 뱀도 많다고 하며 물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한번 놀란 마음엔 조심이 앞서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며 즐겁게 산책하던 길에서, 주의하며 바닥도 자주 보게 되는 길이 되었다. 뱀이 있을까 봐...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은 그나마 낫다. 겁이 나는 것은 강아지들과 산책할 때 혹 나의 시야에 접하지 못한 곳에 있을까는 염려 때문이었다. 물론 모르고 지난 시간에도 뱀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되돌아오던 시간에 마침 그 자리에 오게 된 건지도 뱀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모른다. "정확히도 모를 일"에 내 염려는 커진 것이다.


평상시엔 하늘에 펼쳐진 신록의 숲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초록 잎들 사이에 간간이 내리쬐는 햇살들을 받으며 나까지 하늘 숲으로 끌어올려 줄 것만 같았던 힐링 속에 심취되어, 걷는 건지  하늘에 떠있는지 모를 즐거움으로 산책하곤 했다. 그런데 한번 놀라고 나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막대기조차 순간적으로 뱀은 아닐까 움찔하게 된다. 작은 일에나 큰일에나 놀라면 위축되는 인생살이와 같다. 언제까지 계속되진 않을 것이지만, 당분간은 발걸음에 눈이 갈 것은 뻔한 일이다.


새벽 아침 유난히 더 푸르른 숲길에 들어선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날인 것 같다. 데크길 바닥에는 늘 만나는 개미 외에도 많은 곤충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곳에 나방도 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생물들이 부지런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내가 못 봤을 뿐이다. 아니 안 봤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내 발에 밟히지나 않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걷다, 뱀을 만났던 곳 주변까지 왔다. 물론 뱀은 그 자리에 없았다. 애당초 나를 바라봤다고 생각했던 뱀은 내가 지나치는지도 모를 수도 있었다.


"그래.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는 아니다..."

"전부를 알고 가야 할 필요도 없고..."


사실은 보지 못하는 면으로 더 새로운 인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놓친다. 나 역시 놓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고개 들어 쳐다보는 하늘숲과 고개 숙여 바라보는 바닥 길외, 멀리 저 멀리 저 산 너머가 궁금해진다.  저 산너머에는  저 다리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늘숲 위의 하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의 내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 곳을 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은 하루겠지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만끽하며,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내일도 있다.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이 있기에 참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내일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한다.


한치 앞길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기에 조심하고 철저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치 앞이 있는 것이 인생길이다.  치 앞이 있기에 어떤 일을 겪던, 무엇을 보든 조금이라도 더 멀리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한 치 앞을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





p.s.  민형식 님 작사 김원호 님 곡의 "언덕에서"를 바리톤 오현명 님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ume-S-v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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