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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30. 2022

다양한 스트레스를 조율해 나가며 함께 시작하는 힘

조절할 수 있는 주어진 권한을 쓸 수 있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오래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그레이 아나토미(Grays anatomy)를 다시 보았다. 재미도 있지만 "이게 인생이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미국 의학 드라마다. 날 좋은 주말, 시즌 하나를  다 봤다. 이렇게 스트레스 풀며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미국에서 의사는 좋은 직업이기도 하지만 인정받고 대우받는 이상으로 일은 힘들다. 드라마라 더 그런지 모르지만 자신의 철학이나 철저한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디 의사라는 직업뿐이겠는가. 어떤 일이든 귀하고 동시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 할지라도 내 일을 하고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네가 하는 일이 너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느냐?"라고 자문했을 때 "아니다"라는 답이 많았다면 그곳을  떠날 때가 된 것이라 했는데, 아침마다 "아니지..." 하면서도 아무 일 없듯이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떠날 때가 된 것일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었다면 더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일에도 적응하며 살수 밖에 없는 현실 속의 소박한 인생 아닌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런저런 스트레스는 꼭 붙어 다니는 친구?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게 나야" 자존감 있게,  스스로를 아껴주고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늘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에 불과하다. 뭔가 "반전"이 있을 것 같은 인생 속에서 반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참고, 때로 폭풍우 속에서도 사투를 벌이며 항해하고 "열심히"를 부르짖으며 최선을 다했고, 견디다 보니 회복탄력성은 높아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견디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적이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밖에 없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필요한 자극을 동반해 삶에 활력을 주고 발전적으로 이끌기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Vermin X라는 기계가 있다. 식품회사나 곡물창고의 저장고에 쥐가 서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쥐가 싫어하는 초음파 주파수로 청각에 장애를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쥐가 잘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찌이익 거리는 소리가 사람이 듣기에도 시끄럽다. 스위치가 보이길래 꺼본다. 조용하다. 꺼버리면 되는데... 주변의 스트레스도 어쩌면 이 기계와 같지 않을까. 상대방이 받으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받는 것은 자신이니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스위치를 끄는 것 밖에 없다.


외적인 환경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면 선택권이 있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스스로를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양보와 미덕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드러내 놓고 자신만을 위한다면 교만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를 확신한다면 자신을 옹호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무엇인가를 고쳐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 흠이 있다면 흠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흠이 있다면 상대방도 흠이 있기 마련이다. 한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도 같은 모양과 맛을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물며 가장 위대한 창조물인 인간이 어찌 닮은꼴을 가질 수 있겠는가. "당연한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만, 자신의 잣대가 더 중요한 우리는 스스로의 잣대와 다른 상대방들 때문에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어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올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스트레스의 자라남"은 내 안에 있다. 스스로에게 조절기가 있다는 말이다. 책임감 있는 자신을 스스로가 존중하기 시작할 때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기는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도전"과 "응전"은 인류의 역사일 뿐 아니라 개인의 역사에도 해당된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개인에게 닥치는 외부의 모든 위협, 공격 등 커다란 영향은 물론 부담스러운 심리적인 것까지 "도전" 즉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어떠한 "응전"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역사"도 달라질 것이다.  


스트레스는 없을 수 없다.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이 있을 수 없기에, 죽을 때까지 스트레스는 온갖 모습으로 곁에 붙어 있을 것이다. 떨쳐 내긴 힘들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기에 힘들어도 조절력을 키워야 한다.

스트레스 없이 살아갈 순 없지만 스트레스라는 도전에 적절히 응전해 나갈 때,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다양한 모양의 스트레스를 적절히 조율하며 함께 하는, 시작하는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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