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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n 14. 2022

등산(登山)과 하산(下山)을 함께 시작할 수 있는 힘

산은 올라갈 때 내려올 때를 생각해야 한다.





일상이나 직장에서나 하루를 보내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을 맞고 점심을 오르며 저녁을 향해 내려가는... 쉬는 날 맘먹고 산에 올라 점심 먹고 내려오는, 모양은 다를지 모르나 같은 여정이다. 의미를 두자면 일상의 하루만 그렇겠는가. 언제였는지도 모를 어린 시절이 지나 어느새 사회의 일원으로 개인의 목적과 조직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자신을 바라본다. 점심 산을 향해 열심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붙잡지도, 밀지도 않았던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며 사오십 줄 정년과 더불어 또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주위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올라가던 점심 산에서 내려와 저녁 내리막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야 걷기 운동의 확산으로 산을 탄다는 느낌보단, 조금  강도 높은 걷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트래킹의 개념도 크다.  산을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고 여유를 가지며 즐거운 등산을 하라고 말은 하지만 이상하게도 등산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정상까지 올라 제일 높은 곳에서 인증샷이라도 남겨야 제대로 산을 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산에 온 나름의 이유와 목적은 있겠지만 그저 올라가는 순간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체력이 하락하는 한도 내에 몸을 써야 하지만 산이기에, 높은 곳이 보이기에 점령하고 싶은 욕구는 개척 본능의 인간 심리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사실 등산은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산을 정복(?)하겠다는 개인의 목적이 성취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등산(登山)은 하나가 아니라 하산(下山)과 얽혀진 1/2에 불과한 것이다. 기를 쓰고 올라왔지만, 한순간의 정경에 흐르는 땀을 날려 보내면 새로운 등산,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내려가는 하산이 아닌 다시 살아가기 위한 등산이 시작된다.


조금 더 강도 있게 말한다면 산을 오르는 것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려가기 위해서다.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것은 중요하다. 올라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도 중요하다. 온 힘과 열정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보이는 정상을 눈앞에 둔 이들의 모습은 골인지점을 바로 앞에 둔 마라토너 같다. 마침내 목표를 이뤘지만,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목표를 달성한 정상에서 느끼는 희열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많은 고통들을 보상해준다. 달콤하고 짧은 휴식은 "올랐음"승자의 기쁨을 충분히 보상해 준다. 하지만 산에서 살 순 없다. 산 아래 원래 있던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루면 비어낼 순간도 없이 다시 반복되는 일상, 매일의 인생 산행길은 오를 때도 내려갈 때도 뭐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상을 떠나 세월을 투자해 오르는 산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투자해서 정복하려는 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국은 내려와야 한다. 산은 더불어 살아가고 사람을 품어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삶과 동일하지는 않다. 산은 사람이 없어도 살아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산 없이 살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산에서 오르는 방법도 터득해야 하지만 내려가야 하는 법도 얻어내야 한다. 


어쩌면 이제는 산을 내려가야 할 시간일지 모른다. 어둠이 닥치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올라오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탓에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풀린 다리와 늘어진 근육으로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똑같은 거리를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길이 더 가벼울 수도, 더 힘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등산할 때는 내려올 힘도 비축해놓아야 한다. 오르고 내려감의 반복이, 사는 과정이다. 반복되는 여정 속에 오르는 힘 못지않게 내려오는 힘도 중요하다. 신나게 올라가기에 내려오는 것을 미리 저축해두기는 힘들다. 그래도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내려오는 힘도 반드시 키워가야 한다.


무엇이든지, 처음 시작하는 순간에 끝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 생각하면 지켜야 할 것들조차 뿌리치고 그저 앞만 향해 가려는 무모함은 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려와야 할 산길에서 누군가들과 더불어 동행하며 내려올 길을 택할 수도 있다. 내려올 때를 대비해 조금 가볍게 오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눈앞에 산이 있기에 오르게 된다. 그저 산이 부르기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올라가는 기쁨 속에, 내려와야 하는 현실을 담아두고 걸음을 떼야한다. 올라가는 바로 이 순간에, 내려와야 할 힘도 함께 비축해 가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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