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Jun 24. 2022

시작하기 힘들기에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뭐라도 하고 움직이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강아지와 산책한다. 강을 따라 이어진 벚나무길,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빠찌가 수없이 떨어져 있다. 까만 알갱이들이 걸을 때마다 톡톡 소리를 낸다. 지난주 친구들이 왔을 때 함께 버찌를 따 먹어 다. 버찌는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아주 풍부한 과일인데, 열매가 작수확이 어렵고 사실 맛이 없다 보니 식용으로 사용 하진 않는다. 아침마다 물주며 사랑받는 블루베리와 견주어도 영양가로는 손색없지만 씁쓰름하고 당김 없는 맛은 돌아보지 않게 만든다.


어쩌면 꽃의 역할이 너무 크다 보니, 꽃이 지고 난 산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일까. 하기사 꽃도 훌륭했지만 열매의 맛도 좋았다면 벚나무가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하나의 역할만 충분해도 벚나무는 봄의 대명사처럼 그 몫을 인정받는다. 어쩌면 벚나무에겐 그게 낫다. 한때를 아름답게 물들였던 벚나무열매가 걸을 때마다 화음을 넣어주리듬 있는 산책길이다.


맘 잡고 멀리 나오면 자연과의 교감은 확실히 높아진다. "동네 마당만 걸어도 되지"라는 생각에 정해 놓고 운동하지 않는 게으름을 부리다, 작정하고 동네를 벗어나 걸으니 새들의 노래 속에 이런저런 "공상"과 "저 멀리"도 보게 된다. 오랜만의 산책길은 마당에서 얻는 힐링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멀리 저 멀리" 가고 싶은 곳들과, 가야 할 곳들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펼쳐본다. 이렇게 좋지만 막상 나오기까지가 쉽지 않다.


매사가 그렇다. 시작하고 나면 좋은데 시작하기가, 첫 발을 떼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때론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 이유도 없다. 그저 뭔지 모르지만, 해도 안 해도 별다를 것 같지 않은 일상이기에 그냥 움직이기 싫을 뿐이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한걸음 내디뎌보면 나오기를 잘했다 생각 드는 것처럼, 게으른 몸뚱이를 끌고 내딛기를 시작한다면, 이미 고지를 목전에 둔 것이나 다름없다.


많이 걸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어느새 반환점이다. 쉬는 날, 그저 편히 지내리라 마음먹고 책 보 잠깐 게으름을 피웠을 시간에 불과하다. 집 밖으로 나와 산길을 내려가기까지 움직이는데 걸리는, 마음 시간이 늦게 작동했을 뿐이다. 해야 할 일들과 눈에 보이는 쌓여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지 못하는 것도 마음거리 때문이었다. 거기에 하고 싶은 일들까지, 욕심이, 꿈이라는 포장 속에 써져 산적해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음에서 비워버리지도 못하면서 쌓아두고만 있는 현실이다.


사는 것은 해내는 것과 같다. 눈앞에 보이는 펼쳐져 있는 길이든, 꼬여 있는 길이든 하나씩 풀어가고 치워가며 앞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불행인지 몰라도 영사기 필름 돌리듯 삶은 뒤로 돌려갈 순 없다. 노화되어가는 세월을 차치하고서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앞으로 가는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하니, 쌓아놓은 것들을 치워 가는 길을 넓혀 나갈 수밖에 없다. "우선멈춤"의 남발은 있을 수 없다. 마음거리를 둬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움직여야 한다. 시작해야 한다. 커다란 목표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면 해내기 마련이다. 오늘 아침 장미정원 주변의 풀을 뽑았다. 한주, 아니 며칠만 지나면 또 풀밭이 되기에 그냥저냥 미루다 보니 아예 풀밭이다. 때로 풀에 가려, 보고 싶은 장미나 백합들이 치인다. 보고 싶은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풀은 제거해야 한다. 사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가꿔줘도 마당은 산뜻하게 보답해 준다. 아침에 풀 뽑고 정리하기를 "시작"해서이다.


먹고사는 너무도 단순한 일상, "삼시 세 끼" 이야기는 방송 트렌드까지 바꿔놓았다. 늘 그렇게 살아오던 일이었지만, 생각과 이야기를 불어넣음에 따라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된 것이다. "이게 될까?" 싶었던 의문은 먼저 "시작"해 버림으로 새로운 영역의 개척자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저런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도 호응을 얻다니...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시작했기에 그들의 안목과 용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삼시 세 끼"의 여러 버전즐겁게 시청했던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뜨려 바위에 세운 이야기는 오늘날 스스로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일어나 기지개라도 켜야 한다. 어떤 일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우리 앞길을 막을지, 혹은 훤히 뚫어 줄지 모르는 세상이다. 분명한 것은 머무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가야 한다. 무언가라도 시작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순간만 붙잡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된다. 스스로를 누르고 있는 분신 같은 잡다함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걸어 나와야 한다.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웅크리고 있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상유지도 하기 힘든 현실이다. 지금이 딱 그런 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미뤄뒀던 꿈이 있다면 끄집어내야 한다. 처박아두었던 일이 있다면 찾아내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멈추고 서있던 무릎을 두드리며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시작하기 너무 힘들기에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 면역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물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