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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1. 2021

그물코

사소한 일들 흘려보내기..




하루 종일 내리던 봄비가 그쳤다. 오늘 아침은 맑고 화창하다, 먼산은 운무에 걸려 있지만 저 멀리 다리 쪽엔 파란 하늘이 보이니, 맑아질 것이다. 마침 마당을 밟다 보니 대문 앞에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그대로 있다. 어제 비가 오길래 봉투로 빗물이 들어갈까 봐, 묶은 다음에 일부러 거꾸로 세워 놓기까지 했는데.. 돌아보니 다른 집 앞에는 쓰레기봉투가 없다. 이상하다 우리 것만 왜 안 가져갔을까? 살짝 화가 나려고 한다. "아니, 못 보신 건가". 나가서 종량제 봉투를 바로 세워 놓는다. 봉투 묶어둔 쪽에 흙이 조금 묻었지 하루 종일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봉투에 물이 들어가지 않아 무겁게 불어 있진 않았다.  


기분이 나빠지려는 것을 누른다. 그래 어떻게 안 보였을 수도 있겠지. 내일 가져가려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 사소한 일 아닌가. 사소한 한두 가지 일도 큰 일로 연결될 수 있다면서, 꼼꼼하게 다 짚고 넘어갔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성격 덕에 욕도 많이 먹었다. 그 점은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당시 하던 일은 사소한 일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일일이 확인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들도 많다. 그저 먹고사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사소한 일들은 사소하게 넘겨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기분이 상해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실수까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요즘 인터넷에서도 이런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본다. 살기가 각박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어디선가는 위안을 얻어야 하는데 잘 안되기 때문이다. 다들 자기 살기에 바쁘니 남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코 크기가 정해져 있다고 들었다. 어린 물고기들의 씨알을 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언젠가 중국어선이 우리 해안가에서 촘촘한 그물로 고기를 잡다가(싹쓸이다), 해안경비대에 걸린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참으로 못할 짓이다. 다큐프로에서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 동네 사람들이 엉성한 그물로 힘을 합쳐 잡은 후에 작은놈들은 다시 강으로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을 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몇 마리 잡히지 않은 물고기에 감사해하며 요기를 때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물고기나 자신들이나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고기를 잡는 어부나 도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씨알이 굵고 작고를 떠나 무조건 잡아넣어버리면 바다에 남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인간 욕심 공해"는 바다도  오염시키고 있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행동이다. 작은 물고기는 금방 통통하게 자라서 우리 곁에 올 것인데... 과실도 이제 막 모양을 잡기 시작한 것은 먹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맛있게 익어야 수확하지 않는가. 어린 녀석들도 알에서 깨어나 세상에 난 맛을 즐기며 살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자연의 순환을 위해서 몸을 바치게 하는 것이 훨씬 나으련만, 때로 눈앞에 싹쓸이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사소한 일들도 그물코다. 그물코 크기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흘려버리게 될 수도, 일일이 걸릴 수도 있게 된다. 내가 엮어가는 그물코다. 오늘 나는 어떤 그물코를 엮는 하루를 보낼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그물코를 더 넉넉하게 키워 웬만한 일들은 쑥~쑥 빠져나가게 줘야 되겠다. 목숨 걸만 한 일 아니고,  당장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만 빼면 살아가는데, 사실 크게 염려할 것은 하나도 없다. 


좀 더 잘 살고 그러면서도 인정받고, 조금 더 욕심을 채우려고 그래서 한 가지도 용납하지 못하고 다 제 의지대로 밀고 나가야만 하는 천성 때문에 그런 것뿐이다. 오늘도 널찍한 그물코에서 이런저런 일들은 쑥~쑥 빠져나가고, 지인의 큰 수술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그물코에 걸려 기도하고 응원하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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