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냐는 말에 아파트에 살 땐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좋다고 했습니다. 어찌 말하면 다 심드렁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사방 정형화된 공간에 계절이 바뀐다고 딱히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다 보니 바뀌지 않는 얼굴의 계절과 더불어, 스스로도 늘 같은 모습과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았었나 싶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땅을 곁에 두고 사계를 접하고 보니, 어제도 오늘 같지 않고 내일도 다를 것을 알게 됩니다.
봄을 만끽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여름이 성큼 옵니다.
온갖 생명체들과 땀 속에서 씨름하다 보면 색색이 달라지는 가을이 빠른 준비를 재촉합니다.
"올 겨울은 지난해 보다 훨씬 추웠네~~"
머물 곳 없는 길냥이들과 들짐승들, 온갖 초목들까지 속속들이 얼어붙는 땅속에서도 발을 오그리면서 한 계절을 보냅니다.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던 겨울이었어도 봄을 끌고 오는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햇살 잘 드는 앞마당에선 수선화와 튤립이 얼굴 보인 지 오래고, 작년 봄 조용하게 고개 숙이며 하얀 꽃을 피워냈던 동강할미는 그늘진 한 구석에서 솜털이 가득한 얼굴을 수줍게 비비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흙과 함께 온갖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마당 있는 집에서 보는 계절은 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좋을 뿐입니다.
봄이 열리는 날부터 바빠지는 시골장터에도 꽃 파는 곳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끕니다.
꽃 한 송이를 사면서도 노지 월동(露地越冬) 되냐? 고 묻습니다.
마당에 심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얘는 노지월동 가능해요?"
"그럼요 ~ 노지 월동 가능하고 말고요"
어차피 사고 싶었던 꽃이지만, 꽃 장수 아주머니의 한마디를 듣고서야 삽니다.
생각해 보니 참 뻔뻔한 질문입니다.
30도의 폭염에도 견디다가 영하 15도의 설한에도 죽은 듯이 보이는 생명을 연장해 살고 봄이면 다시 살아나느냐는 의미인데 노지에서 아무 도움 없이 견뎌야 하는 것인데...
물론 해를 보내도록 살아남는 아이도 있고, 땅속에서 다른 아이들을 위한 거름으로 사라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수선화나 튤립 칸나 등 구근류들은 알뿌리로 저장하기 때문인지 비교적 월동이 잘 되는 편입니다. 월동 야생화도 많지만,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은 것을 보고 한두 가지만 심기로 해, 저희 마당엔 매발톱이 많은 편입니다.
사실 몇 해를 그렇게 지내온 아이들입니다. 씨가 떨어져 다시 자라고 꽃이 피고 순환되는 것이지요.
봄의 전령사 산수유가 노랑머리를 트며 올라오기 시작하면, 마당 구석구석에선 이름도 채 알리지 못한 여린 생명들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노지월동한 아이들, 용사들입니다.
어찌 그 모진 계절을 감당하고 여기까지 왔는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먼저 있던 아이, 새로 들어왔던 아이, 네 땅 내 땅 없이 얽히고설킨 몸으로 좁은 땅을 나눠가며 한 계절을 디디고 살아갈 것입니다.
한편으론 겨울 없이 일 년 내내 움직이며 버텨 살아가야 하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듭니다.
찌는듯한 더위에서 타는 목마름을 온몸으로 버텨야 하고, 온갖 잡벌레들의 괴롭힘도 당할 것입니다.
한치라도 더 뻗치기 위해 땅 위에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치열한 발짓을 해야 할 시간을 겪을 것입니다.
마침내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잠시의 기쁨도 금방 사라질 시간들입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잠재웠던 추운 겨울이 이 아이들이 견뎌야 할 한 해를 버티게 해 준 저력을 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내 눈에선 아름다워만 보이는 자연 역시 변모하는 사계 속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네 삶이 녹녹지 않은 것처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생명은 축복이지만, 가꾸는 것은 숙명이고, 견디고 성장해 이어가는 것은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살기 어려운 세상이 없었던 것 같이 힘든 지금이지만, 돌아보니 전에도 그랬습니다.
때론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도 많습니다.
무슨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누구라도 스스로의 삶에 대해 스스로만큼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힘듦만으로 이어가는 순간은 없습니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되듯 즐거운 순간도 함께였습니다.
앞으로만 가야 하는 인생에선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요.
사계가 있어 자연의 묘미를 얻으며 사는 축복을 받은 우리는, 지금 다시 맞이할 봄꽃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